‘편리함의 늪’, 탈팡이 어려운 이유 [줌인IT]
||2026.02.20
||2026.02.20
“새벽배송의 편리함, 특히 제주에선 쿠팡 외에 당일배송은 꿈도 못 꿔요.”
쿠팡의 3370만건에 달하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에도 이른바 ‘탈팡(쿠팡 탈퇴)’을 망설이는 일부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등 경영진의 책임 은폐 논란과 비협조적 대응, 한미 통상 마찰로까지 번지는 상황에 소비자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쿠팡이 제공해 온 일상의 편리함을 포기할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 앞에서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2025년 말 보고서를 통해 “쿠팡이 로켓배송, 최저가 전략, 멤버십 혜택 등을 기반으로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개인정보 유출 발표 직후 감소했던 이용자 수는 소액 보상 쿠폰 지급 이후 다시 소폭 반등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팡 앱의 지난 1월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는 평균 1500만명대까지 하락했다가 구매 이용권 지급 당일인 15일 이후 다시 1600만명대로 회복했다. 1월 말 주간 활성 이용자 수(WAU) 역시 12월 말 2600만명에서 일시 감소한 뒤 2700만명대로 소폭 반등하며 이커머스 플랫폼 1위 지위를 유지했다.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도 절대적인 이용자 규모 자체는 크게 흔들리지 않은 것이다.
쿠팡 사태가 확산하고 있음에도 시장 점유율이 견고한 이유는 결국 ‘편리함’이다. 빠른 로켓배송, 방대한 상품군, 무료 반품 시스템, 가격 경쟁력이 결합되며 일상화된 편의를 만들어냈다. 특히 로켓배송은 육아와 가사, 직장 생활에 쫓기는 소비자들에게 사실상의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필요한 순간 내일 아침 도착한다’는 확신은 단순한 쇼핑 편의를 넘어 일상의 안정감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시스템은 판매자의 종속 구조 속에서 더욱 강화돼 왔다. 동일 상품을 묶어 가격 중심으로 정렬하는 구조는 셀러 간 마진 경쟁을 유도한다. 판매자의 수익성은 악화되지만, 압도적인 거래 규모 때문에 플랫폼을 떠나기도 쉽지 않다. 낮은 공급가와 풍부한 상품군이 유지되고, 이는 다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판매자의 부담이 소비자의 편익을 떠받치는 역설적 구조다.
자영업자에게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용량 원재료를 상시 소진하는 업종에서 배송 속도와 예측 가능성은 영업 안정성과 직결된다. 오후 주문 상품이 다음 날 새벽 도착하는 체계는 재고 리스크를 줄이고 운영 비용을 낮춘다. 동일한 속도·가격·안정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대체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에서 ‘탈팡’은 사업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탈팡 움직임이 동력을 얻으려면 이러한 효율의 문제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19년 촉발된 ‘노재팬’ 운동 역시 불매 동기는 강력했지만, 대체재가 부족한 영역부터 소비가 서서히 회복됐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탈팡 역시 예외가 아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속도·가격·편의 격차가 유지되는 한 불매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쿠팡의 행태 변화를 이끌어낼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수익성에 직접 압박을 가하는 경쟁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과도한 수수료 체계와 사실상 강제되는 광고·물류 비용 구조를 점검하고, 데이터·리뷰·알고리즘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 판매자가 플랫폼에 과도하게 종속되지 않도록 공정한 거래 질서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쿠팡을 대체할 선택지도 키워야 한다. 경쟁 사업자들이 속도와 가격, 물류 안정성 측면에서 소비자 편익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벽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 공동 물류 인프라 확충 등은 쿠팡 외 실질적 대안을 키우는 방안이 될 수 있다. 탈팡 효과가 커지려면 소비자의 결심만으로는 부족하다. 떠나도 불편하지 않은 시장 구조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
이선율 기자
melod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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