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행위를 묻고, 한국은 주인을 묻는다 [줌인IT]
||2026.02.05
||2026.02.05
“안전벨트는 만들었지만 정작 타고 갈 차가 없다.”
속도를 내는 듯했던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언젠가부터 제자리걸음이다. 미국에선 탈중앙화 금융과 전통 금융 사이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싸움이 일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수싸움만 치열하다.
스테이블코인, 실물자산토큰(RWA) 등 디지털자산은 이제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단계를 지났다. 글로벌 시장에선 이미 누가 더 빠르게, 어떤 구조로 설계하느냐가 경쟁의 핵심으로 옮겨갔다.
실제 격차가 드러나고 있다. 일례로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커스터디(수탁), ICO 플랫폼, 투자사, 브로커리지, 자체 체인, 지갑, 카드 등 웹3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크립토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그 동안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는 법적 제약에 단순 ‘거래 중개’ 업무만 하다가 한 때 4위였던 글로벌 순위가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런 차이가 왜 생겼을까. 글로벌 웹3 전문 리서치사 타이거리서치는 그 배경을 ‘사전 규제’에서 찾는다. 한국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금융 시장을 ‘자율에 맡길 영역’이 아닌 ‘관리·통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사고 예방에는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산업 육성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시장은 있으나 산업은 없는 기형적 구조를 만들어낸 셈이다. 타이거리서치는 이에 빗대어 '차는 없고 안전벨트만 있는 상황'으로 비유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현재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디지털 자산 거래소의 대주주 지분 규제 역시 단순 규제로 보기 어렵다. 여전히 디지털자산 산업을 자율적 시장이 아닌 관리 대상 시스템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다. 산업육성이 아닌, 사후 책임을 나누기 위한 전형적인 면피식 접근이다.
반면 미국 등 글로벌 주요국은 규제 초점을 행위와 책임에 두고 있다. 누가 얼마나 지분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무엇을 했는가’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먼저 따진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통제의 법이 아니라 경쟁의 법이어야 한다. 제도권 편입은 결과가 아닌 새로운 출발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글로벌은 이미 뛰고 있는데, 우리는 출발선을 어디로 할지 몰라 세월만 보내고 있다.
정서영 기자
insyo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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