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니다’… 연준 역할에 메스 드는 새 의장 ‘닥터’ 케빈 워시
||2026.02.03
||2026.02.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하면서 미국 통화정책이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요구해 온 금리 인하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입장을 보여 왔지만, 동시에 연준이 금융위기 이후 과도하게 비대해졌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인사다.
이 때문에 워시 체제 연준은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과거처럼 돈을 대규모로 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금융시장과 차입자에게는 체감상 이전보다 더 부담스러운 중앙은행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워시는 최근 기고문과 공개 발언을 통해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이 통화정책 전환 시점을 놓쳤다는 취지의 비판을 이어왔다. 경기 둔화 신호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정책금리를 높은 수준에 오래 묶어 둔 것이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키웠다는 판단이다. 이는 워시가 현재 경제 여건만 놓고 보면 단기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준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 목표범위는 2024년 중반 5.25~5.50% 수준에서 정점에 머물렀다. 이후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하하기 시작해 12월 기준 3.50~3.75%로 내려왔다. 올해 첫 회의였던 지난달 회의에서도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워시가 문제 삼아 온 ‘고금리’란 이처럼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정책금리가 장기간 유지되며, 실질금리가 플러스 영역에 머무는 국면을 가리킨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가계 대출과 기업 투자에 부담을 주는 수준으로 평가돼 왔다.
실제 이 기간 미국 주택시장은 거래량이 눈에 띄게 위축됐다. 기업들 역시 회사채 발행과 차입 비용 상승을 의식해 투자 결정을 미루는 사례가 늘었다. 워시는 이런 흐름을 두고 기준금리가 경기 상황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수준에서 유지됐다는 인식을 보여 왔다. 이러한 시각은 최근 1년가량 연준을 향해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해 온 트럼프 대통령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시장에서 워시가 취임 초기 일단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이는 워시가 통화정책 기조를 전면 수정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워시는 금리를 경기 상황에 맞춰 조정할 수 있는 도구로 보되, 금리 조절만으로 경제 체질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인식을 분명히 해 왔다.
워시는 기준금리보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 규모를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대규모로 사들이며 경기 부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연준 자산 규모는 급격히 불어났다. 연준 자산은 금융위기 이전 1조 달러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2022년 기준 자산이 약 9조 달러까지 확대됐다. 최근 일부 자산을 축소했음에도 여전히 약 6조5000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워시는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돈을 풀기 위해 대규모로 채권을 사들인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안정시켰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부담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준 이사로 재직하던 2010년 연설에서 “연준이 채권을 계속 사들이며 돈을 푸는 정책은 공짜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당시 워시는 2차 양적완화(QE2)를 언급하며, 달러 가치가 떨어지거나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등 물가 신호가 다시 강해질 경우에는 실업률이 높더라도 정책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워시가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완화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과도하게 사들이며 돈을 풀 때 뒤따르는 부작용을 일찍부터 경계했다는 방증이다.
워시의 구상은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시장에 다시 내놓아 자산 규모를 줄이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연준이 채권을 매각하면, 그 채권을 사는 금융기관이나 투자자 자금이 연준으로 이동한다. 연준으로 들어온 해당 자금은 당분간 시중에 풀리지 않는다. 그만큼 시장에 돌아다니는 유동성(자금) 양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연준 부채 구조에서 은행들이 연준에 예치한 준비금이 약 3조 달러 수준에 이르며, 이 준비금 체제가 통화정책 전달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시는 이 구조 자체가 연준을 지나치게 비대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쪽에 가깝다.
기준금리는 연준이 직접 결정하는 정책금리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나 기업 대출 금리 같은 시장 금리는 국채를 비롯한 채권 가격에 따라 움직인다. 연준이 채권을 대규모로 매각할 경우 채권 공급이 늘어나고, 채권 가격은 하락 압력을 받는다. 채권 가격이 내려가면 수익률, 즉 금리는 올라간다. 이 국채 금리는 모기지 금리와 기업 자금 조달 비용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기준금리는 인하됐음에도 가계와 기업이 실제로 부담하는 대출 이자가 오히려 상승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WSJ은 과거 연준이 자산 축소에 나섰을 때 국채 금리가 급등하며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린 전례를 언급하며, 이번에도 비슷한 변동성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연준이 현재 운용 중인 ‘충분한 준비금’ 체제에서는 자산 축소 과정이 과거보다 더 민감하게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런 시각 때문에 워시 체제 연준은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바로 나서서 금리를 조정하거나 돈을 푸는 역할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워시는 중앙은행이 시장 하락을 반복적으로 막아주면, 오히려 투자자들이 위험을 가볍게 여기고 자산 가격에 거품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애런 클라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워시는 연준 개입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려는 성향이 강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워시를 선택한 배경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워시는 다른 후보들 가운데 연준 비대화와 관료주의를 줄곧 비판해 온 유일한 인물이다. 연준 역할 축소를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 기조와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동시에 전직 연준 이사라는 이력은 연준 독립성 훼손 우려를 일정 수준 완화하는 효과도 낳는다.
PBS는 워시 지명을 두고 시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안도감’이 형성됐다고 전했다. 이는 워시가 이전과 다른 처방을 내놓을 만한 가능성이 크지만, 연준 내부를 잘 아는 인물이기 때문에 제도 안에서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한다. 워시가 단기적인 충격 요법을 쓰기 보다, 연준 구조와 역할을 단계적으로 손보려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WSJ는 워시를 두고 “금리 인하와 연준 자산 축소를 동시에 밀어붙이려는 드문 조합을 시도한다”고 평가했다. 브루킹스연구소도 “워시는 중앙은행이 시장을 어디까지 떠받쳐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선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 조합이 성공할 경우 연준 역할을 보다 제한적이고 원칙적인 방향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대로 채권 금리 급등이나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경우, 앞으로 연준이 짊어질 정책 부담이 빠르게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워시 체제 연준 성패가 금리를 얼마나 빨리 내리는지 여부보다, 연준이 시장에 개입하는 범위를 어디까지 줄일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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