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경로로 유통될 텐데… 엔켐, 100억 CB ‘실물 발행’ 이유는
||2026.02.03
||2026.02.03
이 기사는 2026년 2월 2일 17시 52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이차전지 소재업체 엔켐의 100억원 규모 신규 자금 조달이 사실상 밀실거래로 전락했다. 현금 유입이 없는 전환사채(CB) 대용납입에 더해 상장사로서는 이례적인 실물 발행까지 동원됐다. 실적 악화 국면에서 정상적인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2일 투자은행(IB) 및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엔켐은 지난달 말 제16회차 무기명식 무보증 사모 CB 발행 규모를 당초 105억원에서 75억원으로 축소해 발행했다. 이차전지자산관리가 전액 인수하는 구조로, 17회차로 분리된 나머지 30억원은 전액 ‘대용납입(상계처리)’ 방식으로 발행됐다.
대용납입은 대여금을 CB 발행으로 대신하는 방식으로, 회사 금고에는 현금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장부상 거래’다. 이차전지자산관리는 당초 지난달 20일 105억원 규모의 엔켐 CB 전액 인수를 추진했지만, 이틀 만인 22일 30억원은 채권 상계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엔켐이 75억원 규모의 CB를 전액 실물 사채권으로 발행했다는 점이다. 2019년 전자증권제도 도입 이후 증권은 물론 CB 등 사채마저 발행·보유 내역이 전산 관리되는 전자등록 방식이 표준이 됐지만, 엔켐은 이차전지자산관리를 상대로 10억원권 7매, 1억원권 5매를 실물로 찍어냈다.
엔켐이 신규 자금 조달의 투명성을 스스로 낮췄다는 분석이다. 인수 주체인 이차전지자산관리가 지난해 12월 설립된 자본금 100만 원의 서류상 회사라는 점도 의구심을 더한다. 설립 한 달 만에 대용납입 포함 100억원 규모의 CB를 실물 사채권으로 챙겨간 셈이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본력이 없는 인수자가 실물 CB를 담보로 사채 시장 등에서 자금을 융통(질권 설정)해 납입금을 맞추는 전형적인 무자본 조달의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상장사의 신용을 이용해 특정 세력이 자금을 돌려막는 위험한 구조가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엔켐이 정상적인 자금 조달의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초 지난해 하반기 국내 주요 기관 투자자와 만나 최대 1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 조달을 추진했지만, 규모를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인 것은 물론 유통 경로 파악이 어려운 실물 CB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주요 기관 투자자들은 엔켐의 CB 투자를 일제히 외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 지속에 실적마저 악화한 게 악재가 됐다. 엔켐의 연결 매출은 2022년 5098억 원에서 2024년 3657억원으로 줄었으며, 2024년부터는 영업이익도 적자로 전환했다.
여기에 이미 깔려 있는 막대한 양의 CB 전환 대기 물량마저 기관들의 외면을 부추기고 있다. 한때 주당 36만원을 넘었던 주가가 8만원대로 떨어지면서 투자자들의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가 잇따랐지만, 여전히 2800억원 가까운 미상환 CB 물량이 남은 것으로 집계됐다.
회사 측은 “최초 105억원 발행을 예정했던 CB를 16차와 17차로 나누고 17차 CB 30억원을 대용납입으로 발행하는 과정에서 전자증권 발행이 안 되는 탓에 실물 사채권 발행이 이뤄졌다”면서 “16차 CB도 인수 측이 실물 발행을 요구해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시각은 냉담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납입 방식이 현금이든 대용납입이든 증빙 서류만 갖추면 전자등록 발행에 아무런 법적·기술적 장애가 없다”며 “등록 심사를 피하거나, 발행된 CB를 담보로 자금 융통(질권 설정)을 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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