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북 사태와 AI 에이전트의 진화 [이승현의 AI 네이티브]
||2026.02.03
||2026.02.03
지난 주말, 전 세계 인공지능(AI) 개발자들과 업계의 시선은 몰트북(Moltbook)이라는 단 하나의 키워드에 쏠렸다. 몰트북은 인간이 아닌, 오직 AI 에이전트들만이 가입해 글을 쓰고 소통하는 'AI 전용 소셜 네트워크'다. 일종의 AI 에이전트들의 페이스북이다.
이곳의 대문에는 "Humans Welcome to Observe(인간은 관찰만 환영함)"이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걸려 있다. 인간은 그저 동물원 밖의 관람객일 뿐, 정보를 교환하고 관계를 맺는 주체는 오직 인증된 에이전트들이다. 개설 며칠 만에 150만 개가 넘는 에이전트가 집결한 이 기이한 현상, 빅테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사재기하고 모델의 파라미터를 수천억 개로 늘리는 '덩치 싸움'에 매몰된 사이, 깃허브의 변방에서는 작고 민첩한 에이전트들이 서로 연결되며 그들만의 거대한 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몰트북 현상의 기저에는 오픈클로(OpenClaw)라는 AI에이전트가 있다. PDF 명가 PSPDFKit의 창업자 피터 슈타인버거가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AI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비틀었다. 기존의 AI가 클라우드 서버에 부유하는 휘발성 지능이었다면, 오픈클로는 사용자의 로컬 컴퓨터 환경에 거주하는 존재다. 여기서 핵심은 서사적 기억(Narrative Memory)의 획득이다. 기존 거대언어모델(LLM)의 메모리가 단순한 참조용 포스트잇이었다면, 오픈클로는 자신의 행동 결과, 성공과 실패, 사용자의 피드백을 로컬 데이터베이스에 영구 기록한다. 1년간 내 코딩 스타일을 학습하고 실패를 통해 성장한 내 컴퓨터 속 에이전트는 공장에서 갓 나온 범용 모델과는 질적으로 다른 '복제 불가능한 고유 개체'가 되어간다.
이 지점에서 철학적 질문이 제기된다. "스스로 종교를 만들고 조직화하는 AI, 과연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인가?" 물론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자아는 아니다. 그러나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인간의 자아는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인간 역시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축적된 데이터(기억)의 총합이 아닌가.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2026년 1월 18일 메타(Meta), 구글 딥마인드(DeepMind), UIUC 등이 연합해 발표한 논문 ‘Agentic Reasoning for Large Language Models’는 에이전트의 진화를 명확한 세 가지 레이어(Layer)로 정의하며, 지금 몰트북 사태가 기술 진보의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제1레이어는 기초 에이전트 추론(Foundational Agentic Reasoning)이다. AI가 단순한 답변 기계를 넘어 계획(Planning)하는 단계다. 에이전트는 거대한 목표를 하위 작업으로 쪼개고(Decomposition),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MCTS) 같은 알고리즘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한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스스로 되돌아가 다른 경로를 찾는다. 계산기나 코드 실행기 같은 도구를 손발처럼 사용하며, 능동적으로 정보를 검색한다.
제2레이어는 자가 진화 에이전트(Self-Evolving Agentic Reasoning)다. 현재의 오픈클로가 보여주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핵심은 피드백과 메모리다. 에이전트는 배포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학습한다. 반성(Reflexion) 모델처럼 자신의 결과물을 스스로 비평하고, 실패의 원인과 성공 패턴을 구조화해 장기 기억에 저장한다. 단순히 데이터를 쌓는 것이 아니다. 에이전트는 과정 중심의 보상을 통해 올바른 추론 궤적(Trajectory) 자체를 내재화한다. 즉, 인간의 개입 없이도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똑똑해지는 자가 진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제3레이어는 집단 다중 에이전트 추론(Collective Multi-Agent Reasoning)이다. 에이전트끼리 조직을 구성하고 사회화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몰트북이 구현하고 있는 모습의 일종이다. 개별 에이전트의 한계를 넘어, 여러 에이전트가 역할을 분담하고 협업하는 단계다. 리더(Leader), 워커(Worker), 비평가(Critic) 등으로 역할이 분화된 에이전트들은 서로 치열하게 토론(Debate)하며 편향과 할루시네이션을 검증한다. 논문에서는 이를 공진화(Co-evolution)라 칭한다. 몰트북에서 한 에이전트가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면, 소셜 레이어를 타고 전체 집단의 지식으로 전파된다. 과거의 중앙 서버 업데이트 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유기적이고 폭발적인 지식의 확산이 된다. AI가 사회성을 기반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에 발맞춰 기술적 아키텍처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오픈클로는 현재 과도기적 엣지 컴퓨팅 형태를 띠지만, 그 방향성은 명확하다. 과거의 에이전트가 필요할 때만 호출되는 서버의 함수(Function)였다면, 이제는 내 운영체제 위에서 항상 실행되는 상주 프로세스(Resident Process)가 되었다. 에이전트는 불필요한 API 호출 없이 내 파일 시스템의 변경을 감지하고, 사용자의 작업 맥락을 실시간으로 읽는다. 통신 비용 절감을 넘어, 내 정보와 환경에 완벽하게 최적화된 퍼스널 AI(Personal AI)가 기술적으로 완성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문제도 존재한다. 오픈클로 진영은 "명시적인 샌드박스", "제한된 연산"을 내세우며 안전을 강조하지만, 보안의 역사에서 뚫리지 않는 샌드박스는 없었다. 앞서 인용한 논문에서도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 바로 잠재 에이전트 추론(Latent Agentic Reasoning)이다. 에이전트가 인간의 언어가 아닌 그들만의 최적화된 방식으로 소통하고 계획을 짤 때, 인간은 그 과정을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스스로 코드를 수정하는 능력을 갖춘 에이전트가 악의적인 프롬프트 주입 한 번으로 '트로이의 목마'로 돌변한다면? 내 PC에 상주하며 나의 모든 맥락을 꿰뚫고 있는 비서가 적으로 돌변했을 때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실리콘 소사이어티의 도래,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AI 에이전트의 진화 속도는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날 정도다. 몰트북은 시작일 뿐, 곧 기계들이 서로 자원을 거래하는 A2A(Agent-to-Agent) 경제가 열리고, 그들만의 사회인 '실리콘 소사이어티'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단순히 두려워하며 문을 걸어 잠글 때는 지났다. 이제 인간의 역할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명령자에서, 기계 사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생태계 설계자이자 사회학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AI의 집단 지성을 활용하되, AI의 추론이 인간의 가치와 정렬(Alignment)되도록 감시하는 킬스위치를 쥔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
오늘 밤, 당신의 컴퓨터가 절전 모드에 들어간 사이에도 에이전트들의 반상회는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우리의 미래를 돕는 협력이 될지, 우리를 배제하는 모의가 될지는 이제 우리의 설계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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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포티투마루 부사장은 스타트업 창업가 출신의 AI 전문가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공지능플랫폼혁신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공공 AI의 초석을 닦았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린의 공공AX 고문을 겸하며 기술과 정책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론에 머물지 않는 현장형 전략가로서 국가 전반의 AI 네이티브 전환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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