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SBS 기자총회 “‘현대차 기사 삭제’, 메인뉴스에 보도해야”

미디어오늘|정민경 기자|2026.02.02

▲서울 목동 SBS사옥.
▲서울 목동 SBS사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창철씨의 4년 전 음주운전 사고 기사를 언론사들이 삭제·수정한 사례가 줄줄이 드러난 가운데, SBS 기자들이 11년 만에 기자총회를 열고 신뢰회복을 위해 관련 리포트를 메인뉴스에 보도하자는 내용의 요구안 등을 채택했다. 기자협회는 성명을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에도 보도자유 침해에 대해 경고했다.

노동규 SBS 기자협회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SBS 기자들이 기자총회를 연 것은 11년 만이다. 과거에 마지막으로 열린 기자총회는 2015년이었으며, 당시 보도제작물인 현장 21의 시간대 변경 과정에서 기자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며 “이렇게 기자총회가 드문 상황에서 총회가 열리고 요구안이 채택된 것은 그만큼 기자들이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우리 일터에서의 조건과 방향성을 스스로 제시하고 해결하는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SBS 기자협회 측은 기자총회에서 채택된 사안을 2일 보도책임자에 전달할 것이라 밝혔다.

SBS 기자협회 “시청자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이 설 곳은 없다”

SBS 기자협회는 지난달 29일 기자총회를 열고 다음날인 30일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이 설 곳은 없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SBS 기자협회는 △‘현대차 기사 무단 삭제’ 이후 사측의 해명, 징계, 입장 발표 등 일련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규정할 것 △협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진상을 소상히 규명한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할 것 △‘현대차 기사 무단 삭제’와 관련된 협회원이 관련 보직을 유지하는 상황이 부적절하다고 평가할 것 △보도 공정성 침해 사안에 있어 인사위원회 위원으로 노측의 참여를 보장하는 취업규칙으로 변경할 것 △시청자 신뢰 회복을 위해 ‘현대차 기사 무단 삭제’ 사태의 소상한 경위와 우리의 대응 및 반성을 담은 리포트를 8뉴스에 방송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SBS 기자협회는 “기사 삭제를 요구해 보도의 자유를 침해한 현대자동차그룹에도 엄중한 경고를 전달하며, 앞으로도 자본권력의 부적절한 요구를 배격할 것”이라 밝혔다.

SBS 기자협회는 “시청자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이 설 곳은 없다”며 “대기업 홍보팀 임원 전화 한 통에 SBS 홈페이지 기사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고 밝혔다. 이어 “‘보도책임자 몰래 디지털부문에서 독단으로 저지른 짓’이라거나, ‘기사를 복원하고 말미에 경위를 설명했다’, ‘보도책임자와 사장이 구성원에게 사과했다’고 해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라며 “이는 우리를 언론이게 하는 시청자 신뢰를 뿌리째 흔든 일이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현장을 기록해온 기자들에 대한 모독”이라 전했다.

SBS 기자협회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내려진 처벌은 경고와 주의 환기 같은 ‘경징계’에 불과했다”며 “회사를 대표하는 사장은 아무렇지 않게 결재를 하고 ‘관례대로 결과를 승인한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방문신 SBS 사장을 향해 “이것은 예견됐던 일이다. 2015년 삼성 기사를 건드렸던 보도국장이 지금 사장으로 출세해 우리를 또 한 번 부끄럽게 만든 것”이라며 “그에게 무거운 책임이 주어질 때마다 왜 우리의 일터는 우스워지는가. 이번 사태는 11년 전 일을 우리가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후과인지 모른다”고도 했다.

방문신 SBS 사장은 이 사안과 관련해 지난달 28일 “이번의 기사 삭제 건은 정치권력과 대기업, 공인의 범주로 판단하지 않고 ‘일반인’의 기준으로 판단한 잘못이 분명하다”며 “기사 삭제 과정에서 출고부서와 협의하지 않은 점도 잘못이다. 그동안 SBS가 지켜온 보도가치에 어긋난다는 의견에도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현대차 장남 음주운전 기사 삭제 사태에 SBS사장 “엄중 경고”]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장남 정창철씨는 2021년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으로 서울동부지법으로부터 벌금 9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선고 이후 다수 언론사가 이를 보도했지만 지난해 9월 현대차 측의 요구로 SBS, MBC, YTN, 세계일보, 뉴시스 등 5개사가 관련 기사를 삭제했다. 연합뉴스, 뉴스1, CBS, 서울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 6곳은 현대차를 ‘H그룹’으로 바꾸거나 ‘정의선’ 이름을 빼는 등의 방법으로 기사를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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