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도 수업 때 쓰려면 심의… 방학 중 학교는 ‘서류 대란’
||2026.02.02
||2026.02.02
별다른 예외 규정이 없어 사실상 모든 소프트웨어를 심의받아야 하는 구조입니다. 시중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가 160여개에 이르는 만큼, 제출해야 할 심의 자료만 400쪽이 넘습니다. 현장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학희 대한초등교사협회장
올해부터 학교 수업 중 활용할 소프트웨어를 각 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심의를 받도록 하면서 새 학기를 앞둔 교육 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한글(HWP)이나 유튜브처럼 일상적으로 사용해 온 프로그램까지 모두 심의 대상이 되면서 행정 부담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수백 개에 달하는 소프트웨어를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교별로 활용 가능한 프로그램이 달라지면 교육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교사들은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규제하기 위한 법 개정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교사들, 소프트웨어 심의 ‘혼란’… “대상 너무 많다”
2일 교육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해 8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교육자료는 초·중등교육법상 모두 학운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교육부는 법 개정에 따라 지난달 학생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교육과정 운영 지원을 목적으로 개발·보급된 소프트웨어를 심의 대상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학기 시작 전 각 학교는 수업에 사용할 소프트웨어를 접수한 뒤 개인정보 보호 기능 등을 검토하고, 학운위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일선 학교에서는 “행정 업무가 크게 늘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겨울방학 기간인데도 서류를 정리하느라 학기 중보다 더 바쁘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학기 중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수업에 활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학기 중 인공지능(AI)이나 에듀테크 연수를 통해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익히지만, 학운위가 열릴 때까지 수업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신규 발령을 받았거나 전보로 학교를 옮긴 교사들도 이미 3월 이전에 심의가 끝난 상황에서는 사실상 새로운 교육 자료를 신청하기 어렵다.
학교마다 학운위 심의 내용에 따라 사용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달라질 경우, 학습권 침해나 교육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시의 한 초등교사는 “학운위 주기가 정해져 있어, 아무리 좋은 교육 소프트웨어가 나와도 바로 적용하지 못한다”며 “학교마다 통과되는 소프트웨어가 다르면 그 자체로 교육 편차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심의 대상이 지나치게 많다는 불만도 크다. 가정통신문이나 알림장 확인에 쓰이는 ‘하이클래스’, 코딩 교육용 ‘엔트리’, 교육부가 만든 ‘똑똑수학탐험대’까지 모두 심의 대상이다.
별도 회원 가입 없이 QR코드로 접속해 일회성 별명만 입력하는 퀴즈 플랫폼 ‘카훗’도 예외가 아니다. 구글 문서·설문지·시트·클래스룸·맵·유튜브 등 10여개 구글 서비스 역시 각각 심의를 받아야 한다.
◇전문성 없는 학운위… 심의 실효성 떨어져
학운위가 소프트웨어별 AI 기술이나 개인정보 처리 방식과 같은 전문적 내용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일반 공립 초등학교의 학운위는 교원, 학부모, 지역위원 등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학부모위원이 전체의 40~50%를 차지한다.
경북 구미시의 교사 이모(30)씨는 “현재도 학운위 심의는 안건 발의자가 5~10분 설명하고 통과를 외치는 형식적인 절차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며 “교육이나 개인정보 비전문가인 학부모들에게 장시간 설명한다고 해서 실질적인 검토가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교육 외치더니 역주행… 교육부 “제도 보완”
이번 제도 변화는 디지털 교과서를 규제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개정안 제안 이유에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 문해력 저하, 스마트 기기 중독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 담겼다. 이 과정에서 적용 범위가 모든 학습지원 소프트웨어에 대한 사전 심의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우려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적용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로봇 시대’를 대비해 AI 교육을 강조해 온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정부가 생성형 AI 활용을 독려해 놓고, 정작 수업에 쓰는 소프트웨어를 건건이 심의받으라고 하니 현장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사전 심의가 입법 사안인 만큼 교육부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교육부는 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서면 심의 허용, 간소화된 서식과 체크리스트 제공 등 절차 완화 방안을 마련해 시·도교육청에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심의 절차는 개인정보 유출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사 개인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로도 작동할 수 있다”며 “시행 이후 현장의 어려움과 의견이 제기되면 입법부 차원의 제도 보완 논의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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