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원조, 일본을 가다]③ 버핏보다 앞섰던 스팍스의 혜안… “日 밸류업의 다음 퍼즐은 ‘다양성과 개방성’”
||2026.02.02
||2026.02.02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0년대 초반, 일본 재계에서는 ‘거버넌스 개혁’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주주가치를 제고해야 한다는 인식도 약했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10여 년이 흐른 2026년 현재, 일본 기업들에게 밸류업은 선택이 아닌 경영의 기본 전제가 됐다.
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일선에서 목격한 곳이 스팍스(Sparx)자산운용이다. 1989년 아베 슈헤이(Shuhei Abe) 회장이 설립한 스팍스는 일본의 1세대 독립계 자산운용사로, 버블 붕괴와 장기 침체 속에서도 ‘가치투자’ 외길을 걸어왔다. 아베 회장은 지금도 최고경영자(CEO)이자 현역 펀드매니저로서 시장을 누비고 있다.
스팍스의 위상은 단순히 수익률 좋은 운용사에 그치지 않는다. 아베 슈헤이 회장은 과거 아베 신조 내각의 경제 브레인으로서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코드(Corporate Governance Code)’ 도입을 막후에서 주도한 인물이다. 민간 운용사가 일본 정부의 자본시장 설계자들과 머리를 맞대며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끌어온 셈이다.
투자 안목 또한 독보적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일본 종합상사 주식을 사들이며 ‘재팬 랠리’를 촉발하기 훨씬 전부터, 스팍스는 일본 기업들이 보유한 막대한 현금이 결국 밸류업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가치투자를 바탕으로 주주 행동주의를 병행하며 ‘잠자는 현금’을 깨우라고 압박해온 이들의 전략은 적중했다. 덕분에 일본 내 연기금과 글로벌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주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스팍스를 거쳐야 한다”는 격언이 통용될 정도다.
스팍스의 투자 철학은 하나다. 거시경제보다 개별 기업에 집중한다. ▲성장하는 시장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 ▲경영진의 리더십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기업 규모보다 자본 효율성과 수익 구조를 중시한다. 덩치보다 질을 본다는 원칙이다.
일본 증시에 들어오는 자금의 성격은 달라졌고,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문제의식도 변하고 있다. 테츠야 히라노(Tetsuya Hirano) 스팍스자산운용 리서치 부문장을 만나 투자 현장에서 포착한 일본 기업들의 변화를 들어봤다. 다음은 히라노 부문장과의 일문일답.
― 아베노믹스 초기만 해도 일본 기업들은 거버넌스 개혁에 회의적이었다.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전환점은 언제였나.
“가장 큰 전환점은 2018년 도쿄증권거래소(TSE)가 구조 개편이다. 기존 시장 체제를 프라임·스탠더드·그로스로 재편하면서 프라임 시장에 남을 수 있는지가 상장사의 핵심 지표가 됐다. 상장 지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본에서 프라임 시장 탈락은 대기업들에 실질적인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극심한 노동력 부족이 더해졌다. 일본은 2013년 이후 구조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다. 좋은 인재를 확보하려면 프라임 상장사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나아가 행동주의 펀드들이 PBR 1배 미만 기업을 겨냥하며 밸류업 흐름을 키웠다. 거래소 개편, 노동시장 변화, 행동주의 확산이 동시에 작동했다”
― 기업 규모나 산업별 밸류업 온도 차는.
“두 개의 축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하나는 대형주와 중소형주, 다른 하나는 글로벌 기업과 내수 기업이다. 대형 글로벌 기업들은 밸류업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였다. 미국·유럽 기업들과 직접 비교되기 때문에, 주주 가치 기준과 거버넌스 요구를 잘 이해하고 있다.
반면 대형 내수 기업이나 일부 중소형 글로벌 기업, 특히 철도·전력 같은 유틸리티나 가족 소유 기업들은 반응이 느리다. 이들은 주주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와 공공성이 더 중요한 이해관계자다. 이런 구조에서는 밸류업 압력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 과거와 비교해 일본 기업 경영진의 질적 변화를 체감하나.
“‘좋은 기업’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매출이 크고 직원 수가 많은, 말 그대로 덩치 큰 회사가 좋은 기업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적은 자본으로 높은 이익을 내는 효율적인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CEO들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회사는 경영자의 것이 아니라 주주와 투자자의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은 기업이 존중받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 밸류업 이후 스팍스의 투자 판단에도 변화가 있었나.
“인적 자본을 이전보다 훨씬 중요하게 본다. 일본은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는 기업을 만나면 이직률부터 묻는다. 10% 수준이면 정상 범주로 보지만, 20%를 넘는다면 근무 환경이나 조직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인적 자본을 곧바로 기업가치 할인 요인으로 반영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 일본 증시에 유입되는 자금에도 변화가 있었나.
“크게 세 가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국부펀드와 미국 패밀리오피스 등 장기 글로벌 자금이다. 과거에는 ‘일본은 제로 포지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외면받았지만, 이제는 기업 변화가 가시화되면서 장기 자금이 다시 들어오고 있다.
둘째는 개인 자금이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예금에 머무는 것이 불리해지면서, 개인 자금이 은행에서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부의 신(新)NISA 제도가 이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셋째는 행동주의·사모펀드 자금이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행동주의 자금이 일본 밸류업의 수혜를 기대하며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기업과는 어떻게 소통하나.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장기 투자자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둘째, 철저한 리서치다. 해당 기업을 시장에서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경영진이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일본 특유의 방식이다. 격식을 갖춘 미팅과 정중한 레터를 통해 관심과 존중을 표현한다. 이런 접근이 결국 신뢰를 만든다”
― 주주 환원이 장기 성장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본 기업들은 여전히 현금 보유 수준이 높고, 자기자본비율도 약 45%로 글로벌 주요국보다 높은 편이다. ‘환원을 너무 많이 해서 성장을 해친다’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배당 규모가 아니라 자산 배분(capital allocation)이다. 우리는 회사에 ‘현금이 많으니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연구 개발에 얼마를 쓰는지, 설비 투자에 얼마가 필요한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묻는다. 환원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 자산 배분의 논리를 주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일본 밸류업의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다양성(diversification)이다. 여성 이사와 임원을 찾기는 여전히 어렵다. 교육 수준은 높지만, 근무 환경과 사회적 지원이 부족해 여성 리더가 충분히 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는 이민자 문제다. 일본은 여전히 단일 문화 인식이 강하다. 다양성과 개방성이 일본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 한국 밸류업 정책의 미싱 피스(Missing Piece)를 꼽는다면.
“지배구조 투명성이다. 한국 기업들을 직접 만나보니 지주회사·모회사·자회사 구조가 매우 복잡해 외부 투자자가 지배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 충돌이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일본은 모자회사 중복 상장을 거버넌스 훼손 요인으로 보고, 거래소 차원에서 강하게 지양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구조적 불투명성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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