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헤지라는 믿음, 예술품의 ‘실질 수익률’을 다시 묻다
||2026.01.28
||2026.01.28
최근 자산시장 담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이다. 미국, 유럽, 중국, 인도 등 모두가 통화량을 급격히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면 현금의 구매력은 떨어지고, 투자자들은 자연스럽게 “무엇이 내 돈의 가치를 지켜줄까”를 묻는다. 이 질문의 답으로 단골처럼 호출되는 것이 금, 원자재,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이며, 어느 순간부터 그 목록에 예술품도 빠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예술품은 인플레이션 헤지다”라는 문장은 너무 쉽게 소비되는 반면, 정작 헤지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품이 어떤 조건에서 헤지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진지한 논의가 부족하다. 미술품 가격이 오르면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이겼다고 말하지만, 그 상승이 정말 구매력 방어였는지, 아니면 다른 요인의 결과를 ‘물가’라는 단어로 포장한 것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 헤지를 말하려면 먼저 ‘실질’의 언어가 필요하다. 단순히 가격이 오르는 것은 헤지가 아니다. 명목 가격 상승률이 인플레이션을 상회해 실질 구매력을 보존하거나 증가시키는 것, 그리고 더 엄밀하게는 인플레이션과의 관계(동행성)가 확인되어야 한다. 여기서 첫 번째 함정이 등장한다. 예술품은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고, 한국 컬렉터에게는 환율이 개입한다. 원화 약세 국면에서 달러 기준 가격이 그대로여도 원화 가격은 오른다. 이때 체감상 “작품 가격이 올라서 인플레이션을 이겼다”고 느끼기 쉽지만, 실은 환율 효과가 만든 착시일 수 있다.
두 번째 함정은 금리, 더 정확히는 실질금리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을 뺀 값이며, 자산가격을 관통하는 ‘할인율’의 핵심 변수다. 흔히 예술품은 현금흐름이 없으니 금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는 오히려 반대다. 현금흐름이 없다는 것은 가치가 “지금 받는 쿠폰”이 아니라 “언젠가의 재판매 가치”에 더 의존한다는 뜻이고, 이는 긴 만기의 자산처럼 할인율 변화에 민감해질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어떤 작품을 1에 샀고 10년 후 2에 팔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하자. 할인율이 2%이면 현재가치는 대략 1.64 수준이지만, 할인율이 6%로 오르면 현재가치는 약 1.12로 급락한다. 기대 미래가격이 같아도 할인율이 오르면 현재의 ‘정당화 가능한 가격’은 내려간다. 인플레이션이 상승해 명목 가격이 오르더라도, 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긴축이 강화되어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예술품이 ‘헤지’라기보다 오히려 ‘금리 민감 자산’처럼 수익이 구성될 여지가 생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예술품의 헤지 기능이 종종 주장된다. 대표적인 근거는 미술품 가격지수다. 문제는 미술품 지수의 구조 자체가 주식지수와 다르다는 점이다. 예술품은 대체로 이질적이고 거래 빈도가 낮으며, 상당 거래가 공개되지 않는 장외(딜러·프라이빗) 시장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지수는 주로 경매 데이터에 의존하는데, 이 과정에서 거래비용, 보험·보관·운송 등 보유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유찰(팔리지 않은 작품) 정보가 빠지기 쉽다. “팔린 것만으로 만든 지수”는 시장의 하방 정보를 과소 반영할 수 있다. 이런 점은 학계와 업계 모두가 꾸준히 지적해 온 한계다.
예술품 수익률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Mei & Moses(2002)는 반복매매 자료를 구축해 1875년~2000년의 미술품 가격지수를 추정했고, 장기적으로 예술품이 채권(고정수익)보다 높은 성과를 보이지만 주식보다는 낮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고가 명작일수록 오히려 시장지수 대비 성과가 낮아질 수 있다는 이른바 “명작의 언더퍼포먼스”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연구가 명목수익률만이 아니라 CPI로 디플레이트(실질화)한 분석도 함께 고려한다는 것이다. 즉, 예술품을 경제적 대상으로 다루는 순간 이미 ‘실질’이 핵심 언어임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세 번째 함정이 나온다. 선택편의다. 반복매매 자료는 “다시 팔린 작품”만 관측한다. 다시 팔린 작품은 대체로 시장성이 있고, 성과가 좋았거나 적어도 팔릴 만한 사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성과가 부진해 시장에 다시 나오지 않는 작품은 통계에서 사라진다. Korteweg·Kräussl·Verwijmeren(2016)은 이러한 선택편의를 교정하면 미술품 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이 유의하게 낮아지고, 샤프비율(위험 대비 성과)도 크게 떨어진다고 보고했다. 단순 지수로 보이는 ‘그럴듯한 성과’가 실제 투자 성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예술품은 인플레이션 헤지인가? 경제학적으로 가장 정직한 답은 “조건부로 그렇다”에 가깝다. 인플레이션이 상승해도 실질금리가 낮거나 마이너스에 머무는 환경, 즉 통화가치가 약해지는데도 할인율이 크게 오르지 않는 국면에서는 예술품을 포함한 여러 실물·대체 자산이 ‘가치 저장’ 서사를 얻기 쉽다. 원유나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자산과 같은 논리다. 반대로 인플레이션 충격이 발생했을 때 정책 대응으로 실질금리가 빠르게 상승한다면, 예술품 시장은 유동성 축소와 기회비용 증가를 동시에 맞닥뜨릴 수 있다.
윌리엄 괴츠만(William Goetzmann)은 과거 인터뷰에서 “예술품 가격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오르기도 하지만, 변동성이 너무 커서 훌륭한 인플레이션 헤지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핵심은 ‘상승’이 아니라 ‘변동성’이다. 헤지는 원칙적으로 예측 가능한 방어력을 뜻하는데, 변동성이 크면 방어력은 사후적으로만 확인되는 (만들어진) ‘서사’가 되기 쉽다.
그렇다면 2026년의 컬렉터와 시장 참여자에게 실무적으로 남는 결론은 무엇일까. 첫째, 예술품을 인플레이션 헤지로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명목 가격이 아니라 실질 구매력을 기준으로 성과를 바라봐야 한다. 둘째, 지수 수익률을 볼 때는 지수의 구성(경매 중심인지, 유찰 반영 여부, 비용 반영 여부, 표본 선택편의 가능성)을 함께 봐야 한다. 지수는 시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지만, 지수가 곧 “내 컬렉션의 성과”는 아니다.
셋째, 한국 시장에서는 환율을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 원화 기준 가격 상승이 환율 효과인지, 글로벌 달러 가격 상승인지, 혹은 국내 수요·공급의 구조 변화인지 구분해야 ‘실질’이 보인다. 넷째, 예술품은 금융자산이기 전에 소비재이자 경험재다. 예술품에는 현금흐름 대신 ‘감상 효용’이라는 비금전적 효용이 존재한다. 이 효용은 인플레이션과 무관하게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예술품 투자를 논할 때 자주 잊히는 부분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비금전적 수익이야말로 예술품이 다른 자산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물론 이러한 비금전적 수익으로 금전적(재무적) 수익이 악화될 수 있다.
결국 예술품이 인플레이션을 “이겨준다”는 문장은 그 자체로 틀렸다기보다 너무 단순하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예술품이 강해지는 메커니즘이 있다면 그것은 물가 상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실질금리·유동성·부의 효과·환율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환경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2026년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예술품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피하려 하는가, 아니면 인플레이션 같은 거시 변수의 소음 속에서도 끝내 남는 가치와 서사를 사려 하는가. 그리고 그 둘을 동시에 원한다면, 우리는 ‘헤지’라는 단어에 기대기보다, 실질금리와 비용, 유동성의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한 전략을 갖고 있는가.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교수, 메타버스금융랩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위험관리·ESG금융·대체투자다. 금융위원회 테크자문단, 글로벌 ESG, 한국탄소금융협회 ESG금융팀장을 포함해 현업 및 정책에서 다양한 자문 활동을 한다.
류지예 연구원은 경북대학교 경영대학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 연구주제는 미술시장, 예술품 거래데이터분석이며 메타버스, NFT등 예술산업 관련 신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rjy1524@knu.ac.kr
고객님만을 위한 맞춤 차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