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 1세대에서 민주당 ‘킹메이커’로…7선 이해찬 전 총리 별세
||2026.01.25
||2026.01.25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별세했다. 고인은 학생 운동권 1세대로 국회의원 7선,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다. 대선에서 민주당 ‘킹메이커’ 역할을 수차례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 1세대 학생운동권, 7선 의원·국무총리·민주당 대표, 대선 ‘킹메이커’
이해찬 수석부의장은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뒤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 운동에 투신한 1세대 운동권이다.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재를 맡고 있던 평화민주당에 영입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당시 3선을 노리던 김종인 민정당 의원과 서울 관악을에서 맞붙어서 예상을 깨고 5000여표 차이로 당선했다. 이후 14·15·16·17·19·20대 국회의원까지 당선하며 7선을 기록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민주당 대표를 마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이재명 정부가 작년 출범하면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았다.
고인은 민주당 ‘킹메이커’로 불려왔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의 선거 전략을 총괄하며 당선을 이끌었고 이후 정무부시장까지 지냈다. 이후에도 민주당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며 대통령을 세 차례 당선시켰다.
고인은 지난 2020년 9월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자신의 전기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그동안 내 선거와 대선, 지자체 선거까지 포함해 대략 15번의 선거를 치렀다. 다행히 내 선거에서는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잘 왔다”고 했다.
◇ 민주당 출신 역대 대통령과 모두 친분
고인은 40년 가까운 정치 인생에서 민주당이 배출한 모든 대통령과 깊은 친분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과 모두 ‘친(親)’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정도다.
고인은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는 동교동계의 핵심이었고,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는 친노 좌장의 역할을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불러낸 것도 고인의 역할로 알려져 있다. 계파색이 뚜렷한 민주당 내에서 계파와 무관하게 두루 인정받는 원로이기도 했다.
고인은 민주당 ‘20년 집권론’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초창기에 ’20년 집권론’을 제시했다. 2020년 9월 고인의 전기 발간 축하연에서 당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건배사로 “가자! 20년!”이라고 하면서 다시 주목받은 바 있다.
한편 고인은 출판사 돌베개 대표를 하고 신림동에서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사회학의 고전 입문서이자 기초 교과서로 꼽히는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공역하기도 했다.
“나는 정치도 민주화운동의 연장에서 시작했어요. 민주적 정당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지. 아직 걱정스러운 바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발전을 해 온 것 같아요. 이제 DJ가 하신 말씀을 조금 느껴.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운동을 하면서 실패는 해도 좌절하지는 않잖아요. 정치를 하다 보면 목표대로 성취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못한 것은 또 하면 돼요. 실패가 아니에요.”
-이해찬 회고록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中
고객님만을 위한 맞춤 차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