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찾는 유럽 반도체 기술 기업들...왜?
||2026.01.25
||2026.01.25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유럽 반도체 기술 기업들이 한국행을 택하고 있다. 자국 내 양산 검증 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최선단 라인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한국이 장비 수입국에서 기술 공동개발의 파트너로 위상이 바뀌고 있다.
과거 한국은 미국·일본·네덜란드의 완성된 장비를 수입해 쓰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이 바뀌고 있다. 유럽의 원천 기술 기업들이 개발 단계부터 한국 기업과 협업하기 위해 직접 찾아오는 구조로 전환되는 중이다. 한국이 단순 제조 허브를 넘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검증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기업들의 한국행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유럽에는 벨기에 IMEC, 독일 프라운호퍼 같은 세계 수준의 연구소가 있어 원천 기술력은 갖췄지만, 이를 대량 생산 라인에서 검증해 줄 종합반도체기업(IDM)이 없다. 한-EU 반도체 R&D 협력센터에 따르면 "삼성이나 SK 라인에서 테스트 중"이라는 레퍼런스가 유럽 스타트업들에게는 투자 유치 보증수표로 작용한다.
유럽 내부 사정도 이들의 한국행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브로드컴이 스페인에 추진하던 10억 달러 규모 반도체 조립·테스트 공장(ATP) 투자를 철회했다. 스페인은 122.5억 유로 규모의 반도체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대형 제조 시설 유치에는 실패했다. EU 칩스법 자금이 독일 드레스덴 등 기존 강국에 집중되면서 유럽 내 기술 기업들은 양산 검증을 위한 대안 시장을 찾아 나서고 있다.
미국과 중국 시장 진입도 어렵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수출은 제한적이고, 미국은 인텔·마이크론 중심의 자국 생태계가 강하다. 반면, 한국은 메모리와 파운드리 최선단 공정을 동시에 보유한 유일한 국가다. 디램(DRAM)·낸드(NAND) 메모리와 로직 파운드리를 한 곳에서 검증할 수 있는 시장은 대만이 아니라 한국뿐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기존 장비로 해결 안 되는 난제, 틈새 기술로 공략"
한국을 찾는 유럽 기업들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당면한 기술적 과제를 해결할 틈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크게 차세대 패키징·신소재, 초미세 공정 계측, 설계 시뮬레이션 분야로 나뉜다.
차세대 패키징 분야에서는 유리 기판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 플라스틱 기판으로는 고성능 컴퓨팅(HPC) 칩의 열 관리와 신호 전달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삼성전기와 SKC 앱솔릭스가 추진 중인 글라스 코어 기판 상용화에 필요한 소재 기술을 보유한 유럽 기업들이 내달 열리는 세미콘코리아에 맞춰 방한할 예정이다.
초미세 공정 계측 분야도 수요가 크다. 3D 낸드가 300단 이상으로 쌓이면서 깊고 좁은 구멍 내부가 균일하게 코팅됐는지 검사하는 기술이 필수가 됐다. 고종횡비(HAR) 구조 박막을 비파괴 방식으로 측정하는 기술, 웨이퍼 표면의 나노 단위 굴곡을 초고속으로 측정하는 웨이브프런트 위상 이미징 기술을 보유한 핀란드·스페인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설계 검증 수요도 늘고 있다. 2나노 이하 미세공정에서는 마스크 제작 비용이 수백억원에 달해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실제 칩을 제작하기 전 컴퓨터상에서 물리적 동작을 예측하는 3D TCAD 시뮬레이션 기술을 보유한 오스트리아 기업도 삼성파운드리·국내 팹리스와의 협업을 타진 중으로 전해진다.
HBM(고대역폭메모리 공정 고도화도 유럽 기업들에게 기회가 됐다. TSV(실리콘관통전극), 하이브리드 본딩 등 공정이 복잡해지면서 기존 장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늘고 있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이후 한국 기업들이 소부장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도 유럽 중소기업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있다.
이들의 연결고리인 EU 비즈니스 허브 측은 '반도체 코리아 2026' 등을 통해 유럽과 한국 기업 모두에게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기업 기술이 얼마나 실제 성과로 나올지는 관건"이라며 "국내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에게는 잠재적 경쟁자이면서도 기술 제휴를 통해 유럽 진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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