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흔든 ‘소버린 AI’…기준 혼선에 네이버만 난처
||2026.01.22
||2026.01.22
‘소버린 AI’는 정부 AI 정책의 핵심 키워드다. 문제는 기준이다. 기준이 불과 며칠 사이에 달라졌다. 그 여파가 산업계 혼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하루 전인 2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한국은행·네이버 공동 AX 콘퍼런스에서 네이버와 함께 만든 금융·경제 특화 AI 서비스 ‘보키(BOKI)’를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은행은 보키를 ‘소버린 AI’라고 설명했다. 외부 인터넷과 차단된 내부망에서 운영되고 한국 금융·경제 데이터를 학습한 AI라는 이유다.
하지만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네이버는 불과 6일 전인 1월 15일 정부가 추진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서 탈락했다. 이유는 ‘독자성 부족’이다. 같은 네이버가 한쪽에서는 소버린 AI의 주체로 소개되고 다른 쪽에서는 소버린 기준에 미달해 배제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소버린 AI의 정의가 사업마다 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네이버가 사용한 AI 모델이 다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소버린 AI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국은행 측은 소버린 AI를 두고 기술 주권과 데이터 통제를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행사에서 보키를 “우리 금융·경제의 역사와 제도, 문화적 특수성을 이해하는 AI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네이버가 그동안 주장해 온 소버린 AI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설명은 엇갈린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2차관은 1월 15일 “남의 경험까지 가져다 쓰는 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네이버클라우드가 이미지 인식 기능 일부에 중국 알리바바의 기술을 활용한 점을 문제 삼았다.
또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20일 “모든 기술을 100% 자체 개발할 필요는 없지만 기술적 주권은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품까지 전부 국산일 필요는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실제 평가에서는 네이버가 모듈을 자체 개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네이버는 자체 기술로 개발한 이미지 인식 모듈도 보유하고 있다. 다만 평가 일정상 이를 적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기준은 있었지만 적용은 일관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논란은 보키와 독자 AI에 사용된 모델이 다르다는 설명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정책이다. 정부가 여론과 상황에 따라 소버린 AI의 기준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네이버만 난처한 위치에 놓였다. 실제로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21일 행사 개회사에서 ‘소버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동안 소버린 AI를 강조해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혼선은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 주가는 1월 15일 하루 만에 4.62% 하락했다. 시가총액은 1조8000억원 넘게 줄었다. 이후에도 주가는 약세를 이어갔다. 1월 22일 오후 2시 기준 네이버 주가는 전일 대비 2.9%쯤 상승한 24만5000원 내외다.
주가가 올라도 15일 독자성 부족으로 인한 탈락 발표 전 가격 25만9500원을 회복하진 못했다. 네이버가 그동안 소버린 AI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워 온 만큼 정책 신호 혼선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행·네이버 콘퍼런스를 기획할 때만 해도 다들 상황이 이렇게 될 줄 몰랐을 것 같다”며 “중간에 낀 네이버만 불쌍해 보인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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