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⑨ ‘공산당의 구세주’ 마윈,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평등사회 중국’으로 포장
||2026.01.20
||2026.01.20
공산당 통치 이념이 흔들리기 시작한 2010년대, 완만해진 경제성장과 심화하는 불평등은 ‘평등한 번영’을 내세운 체제의 모순을 드러냈다. 공산당 통치 이념인 ‘인민이 함께 잘 사는 평등주의’를 사실상 포기한 결과, 계층 간 불평등은 공산당 정권에 큰 부담이 됐다. 특히 특권층 2세들이 고위층 인맥을 활용해 특혜를 누리며 신흥 재벌로 부상하자 불만이 고조됐다. 이때 알리바바의 마윈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서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공산당이 잃어가던 정당성을 보완하는 상징적 ‘구세주’로 포장된 것이다.
◇개혁·개방의 산물, 홍얼따이(紅二代)와 관얼따이(官二代)
공산당의 기본 통치 이념인 평등주의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기부터 은밀하게, 점진적으로 후퇴했다. 1978년 덩샤오핑은 개방정책을 천명하며 ‘선부론(先富論)’을 강력하게 제창한다. ‘먼저 1억 명이 부자가 되면 그 1억 명이 나머지 10억 명을 부자로 만든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1억 명이 우선 잘 살 수 있는 사회구조로 개혁을 추진한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를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덩샤오핑은 고향의 속담에서 떠온 ‘흑묘백묘론’을 전파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간에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공산당의 이념 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당시 부총리 리셴녠을 주축으로 한 강경 보수파는 이런 개방정책에 강하게 반대했다. 개방이 빈부 격차를 심화시켜 결국 자본주의의 폐해를 인민이 떠안게 되고, 그 결과 공산당 정권이 인민 저항에 직면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오늘날 중국 통치의 ‘치명적 걸림돌’로 거론되는 사회 문제는 사실 1980년대 초부터 예견된 문제들이었다.
이런 공산당 지도부의 내분은 급격히 변화된 국제 정세의 영향을 받았다. 1989년 열혈 동맹이던 루마니아 공산당 지도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시민혁명으로 처형된 사건은 ‘공산당도 경제에 실패하면 살길이 없다’는 신호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을 두렵게 했다. 결국 강경 보수파도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인정했고, 중국은 전 세계를 향해 개방 의지를 더욱 분명히 했다.
개방 초기, 경제 성장의 덕을 본 건 공산당 혁명 원로들의 자제들이었다. 이들은 실력과 능력보다 부모의 후광으로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인민이 모두 함께 잘 살자’는 공산당 이념은 뒤로 밀려났고, ‘먼저 부자 되기’라는 자본주의 게임의 서막이 올랐다.
중국은 개방 초기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의 부흥을 위해 많은 국영기업의 경영방식과 소유 구조를 점진적으로 바꾸는 개혁을 추진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국영기업을 매각해 민영화하는 정책이 실행됐다. 이 과정에서 유력 국영기업들의 자산이 중국 혁명 원로 자녀들에게 헐값에 이전됐다. 이들은 정부의 인맥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부동산 사업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고, 외국 기업의 파트너로도 활약했다. 목숨을 걸고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골수 혁명 원로 2세 홍얼따이(紅二代)가 중국 최고의 자본가로 변신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제도적으로 안착한 뒤 중국은 산업화 단계로 도약했다. 장쩌민·후진타오·리펑·원자바오 시기 자원·전력·정보기술(IT)·금융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그 자녀 세대는 부모의 인맥을 발판으로 성장 산업의 창업과 투자에 참여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세대 혁명 원로 자녀들인 홍얼따이에서, 경제성장 시기 지도자의 자녀들인 관얼따이(官二代)로 핵심 경제주체가 이동한 것이다.
이런 금수저들의 폭주에도 중국 인민의 불만은 거의 표출되지 않았다. 폭발적인 경제성장이 다수 인민에게 생활 수준 향상과 풍요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최악의 상황을 경험한 인민들은 개방 이후 사회 안정과 경제성장에 만족했고, 특권층의 축재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공산당의 잃어가던 정당성을 보완한 ‘구세주’ 마윈
그런데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인민들의 생활에 변곡점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제적 풍요와 고속 성장이라는 미래의 약속이 희미해지고 하방 압력이 높아지자, 인민들은 지도자의 자제들이 ‘어떻게 계속해서 부를 이루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홍얼따이·관얼따이의 상상 이상의 축재가 사회적 의제가 됐고, 공산당 이념의 중국에서 이것이 ‘공평한 현실인가’라는 물음이 곳곳에서 회자됐다. 어느 순간 개인의 의문이 집단 불만으로 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공산당 지도부를 압박했다. 중국 역사에서 ‘먹고 사는 문제’로 수차례 정변과 왕조 교체를 촉발한 기억은, 공산당 지도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20여 년간 다양한 중국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중국 인민은 대체로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실상을 접했다. 공산당의 통제와 압력보다 돈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가치관이 더 큰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공산당 정부가 ‘경제적인 풍요를 제공하는 대신 인민들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암묵적 합의의 영향일 수도 있다. 고속 경제성장으로 인한 생활의 질적 향상은 인민들의 정치 참여를 둔감하게 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세가 꺾이자, 공산당 정권에 대한 신뢰에도 균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떠오른 인물이 알라바바의 창업자 마윈이다. 전형적인 흙수저 서사를 등에 업고 중국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그는, 불공정에 대한 인민들의 분노를 희석시키는 상징이 되기에 적합했다. 이제 공산당은 “출신성분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노력하면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확산했고, 마윈은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린 최고의 스타로 등극한다. 다만, 마윈은 2020년 금융당국의 보수적인 규제와 혁신의 부재를 비판했다가 한동안 야인으로 전락한 전례가 있다.
IT 산업의 약진은 ‘인맥보다 실력으로 성공하는 사회’라는 새로운 중국의 신화를 만들었다. 알리바바, 텐센트, BYD의 창업자 등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노력하면 부자가 되는 주인공들이 탄생하며 ‘젊은이들이여 노력하라. 그러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서사가 힘을 얻었다. 이는 중국의 수많은 젊은이를 흥분시키고 첨단 산업에 대한 도전 정신을 고취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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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삼성 중국 지역 전문가로 대륙을 돌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CJ(제일제당) 중국사무소 대표를 지냈으며,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했고, 현지에서 화장품 유통업체 카라카라를 창업하기도 했다. 2012~2017년에는 중국 50대 민영기업 신화련그룹의 투자수석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이춘우 특임교수의 칼럼은 3주에 한 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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