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그대로인데 연기만 잡는 환율 정책 [줌인IT]
||2026.01.20
||2026.01.20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고환율(원화약세)의 배경으로 글로벌 강달러와 엔화 약세,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이 흐름을 단순한 일시적 변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에 점차 힘이 실린다.
달러 강세가 이미 고착화된데다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대외 불확실성도 쉽게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환율 안정을 위한 각종 조치를 내놓고 있다. 원화 환율이 1480원을 넘어서며 급등할 때마다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거나 대규모 달러 매도에 나서고 있다. 해외주식 매각 시 양도소득세를 감면하고 개인 환헤지에 대한 세제 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이런 조치에도 환율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다음 대응으로 외화를 직접 취급하는 금융를 죄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보험사·증권사 관계자들을 불러 달러 관련 상품의 마케팅 자제를 요청했고, 이에 금융권은 당국 기조에 맞춰 관련 상품 판매를 축소하고 수요를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의 고환율을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협조 수준으로 다루기는 역부족이다. 지금의 원화약세가 단순히 특정 주체의 투기나 시장의 일탈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환율 대응이 어딘가 어긋나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거시적 해법은 뚜렷하지 않은 반면, 외환 거래 관행과 시장 참여자들의 행태를 겨냥한 관리·점검·경고만 반복되고 있다.
정부와 외환·금융당국의 경계 메시지가 이어지지만 이는 환율의 근본 원인을 건드리는 접근이라기보다 주변을 조이는 대응에 가깝다. 단속과 점검은 단기적인 변동성을 낮출 수는 있어도, 환율의 추세 자체를 되돌리는 수단으로 작동한 사례는 많지 않다.
물론 시장에서 쏠림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과거처럼 적극 환전하기보다 외화예금으로 쌓아두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 역시 높은 기대 수익을 염두에 두고 달러 매입을 통해 해외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행태가 현물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키운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근본 문제를 봐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를 단기적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핵심 배경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는 것은 한 나라 통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성장 기대가 약해졌다는 뜻이고, 이는 곧 원화의 상대적 매력이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국내 저금리 고착화와 증시의 낮은 배당 성향도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수익 매력이 낮은 시장에서는 자금이 해외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자금의 해외 투자 확대는 일시적 선택이 아니라 이미 구조적인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처럼 성장 잠재력 둔화와 자본의 해외 유출이 맞물리면서 원화 약세는 단기간에 되돌리기 어려운 추세를 형성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2년 이미 달러 강세를 일시적 변동이 아닌 경제의 기초 여건이 만들어낸 결과로 진단한 바 있다. IMF는 환율 대응에 앞서 환율이 왜 움직이고 있는지, 시장 기능이 실제로 훼손되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도 지금의 고환율이 달러 부족 때문이 아니라, 달러를 사고파는 시장의 구조적 불균형과 기대 심리가 결합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다만 환율 수준을 과거 외환위기 국면과 단순 비교해 위기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환율 안정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성장과 수익률 등 펀더멘털을 개선하고, 단기적으로는 외환 수급 불균형과 일방향 기대 심리를 완화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IMF의 진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는 아니지만, 새로운 형태의 위기임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제의 기초 체력을 점검하지 않고 정책 신뢰마저 흔들린다면 ‘환율 1500원 시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장 쉬운 대응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대응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일이다. 고환율의 해법은 주변을 조이는 데 있지 않다. 구조를 손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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