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는 기다리는데, 제도는 멈췄다"…소아 희귀안질환의 현실[명의열전]
||2026.01.19
||2026.01.19
김정훈 서울대병원 소아안과 교수 인터뷰
“진단의 어려움은 ‘경험 부족’…의사 키울 제도 마련해야”
“치료 접근성 한계가 ‘의료 사각지대’…정부 지원 필요”

“희귀 난치 질환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런 질환을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경험 있는 의사를 키우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뒷받침해 주는 제도가 거의 없는 것도 아쉽습니다.”
소아안과 진료 현장은 늘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 아이들은 성인과 비교해 한 명을 진료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들지만, 진료 체계와 보상 구조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성 질환처럼 드물고 복잡한 소아 희귀안질환은 경험 있는 의사가 많지 않아 몇몇 병원과 의료진에게 환자가 몰리는 구조다.
진단 이후의 경과를 설명해 줄 의사, 치료 방법을 함께 고민해 줄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몇 안되는 소아안과 교수인 김정훈 서울대병원 교수를 찾아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의 현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들어봤다.
찾아오는 환자를 위해 시작한 ‘길’
인터뷰 장소에 지친 표정으로 나타난 김정훈 교수는 급한 수술 한 건을 막 마친 상태였다. 이날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환아 9명의 수술을 진행했다는 설명에 괜한 인터뷰 요청으로 환자의 수술 시간을 뺏는 건 아닌지 머쓱해졌다.
그는 “화요일과 수요일 오후에 외래를 보는데, 일주일에 100명 가까이 본다”며 “보통 소아 외래는 30~40명 정도가 적정선인데, 이 숫자를 넘길 수밖에 없는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드물게 소아 선천·희귀난치 안과질환만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의사다. 이런 이유로 그의 외래에는 전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희귀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몰려든다. 그는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권이 없었다’고 표현했다. 질환을 보는 의사가 자신 뿐이라고 믿고 아이들이 오기 때문에, 자신이 빠지면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기는 망막 질환 같은 경우는, 치료 방법을 찾아주는 게 진료하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내 진료실에 오는 아이들이 이 병을 갖고 있으니까, 방법을 찾아줘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진료하는 소아 희귀안질환은 모습도, 경과도 모두 다르다. 어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거의 없고, 어떤 아이는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시력을 잃는다. 같은 병명으로 묶이더라도 유전자 변이가 다르고, 증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김 교수는 희귀질환 진단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기술 부족이 아니라 ‘경험 부족’을 꼽는다. 그는 “보호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인데, 그 질문에 답하려면 단순한 진단을 넘어선 경험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에는 실제 환자를 보고, 치료하고, 시간이 지나 어떻게 변했는지를 지켜본 의사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유전자 검사 기술은 이미 충분히 발달해 있다. 장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진단을 해석하고 설명해 줄 의사가 부족한 게 문제”라며 “이런 경험 많은 의사를 길러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지원하는 제도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연구와 진료를 병행해야 하고, 환자 한 명당 들이는 시간도 훨씬 길지만, 제도적으로는 그 노력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젊은 의사들이 이 분야를 선택하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진단에서 멈추지 않고, 치료까지 책임지는 나라”

제도적 한계 내에서 환아들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연구자들 스스로의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김 교수는 국내외 연구자들을 모아 선천성망막질환(IRD) 치료를 위한 연구팀을 꾸렸다. 해당 분야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일명 ‘어벤져스’팀이다. IRD는 선천적으로 망막세포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시력 저하와 빛에 대한 감각 이상 등 다양한 시각 장애를 유발하는 진행성 질환이다.
연구팀은 희귀질환 첨단 유전자 치료 플랫폼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축했고, 치료제가 사람에게 투여되기 전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평가 기술도 확보했다. 그러나 제도와 재정 지원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이후 연구 단계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연구자들이 선의로 모여서 하는 것이지, 제도가 받쳐주는 건 아니다. 아이를 직접 보지 않는 사람들은 이 절박함을 잘 모른다”며 “내 눈앞에서 내 아이가 나빠지고 있으면, 내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토로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의료 사각지대’는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다. 그는 “우리나라는 병원이 없어서 못 가는 곳은 거의 없다”며 “진짜 의료 사각지대는 병은 있지만 치료제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진단은 했지만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들이야말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대상”이라며 “문제는 의료 접근성이 아니라 치료 접근성”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희귀하다는 이유로,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치료가 미뤄지지 않는 나라, 진단에서 멈추지 않고 치료까지 책임지는 나라다.
김 교수는 다시금 자신을 찾는 환자들을 생각하며 “사실 매 순간이 다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특히 “누가 더 특별한 게 아니라, 기다리다 나빠진 아이들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과거에는 기술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기술은 생겼는데 제도가 따라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는 “기다리다 나빠진 아이들을 떠올릴 때 가장 마음이 무겁다”며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 돼 진정한 우리나라의 ‘의료 사각지대’가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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