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가보지 않은 길
||2026.01.19
||2026.01.19
“AI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겁니다. 아무도 예측 할 수가 없어요.”
얼마전 만난 한 자산운용사 고위 임원에게 지금의 시장을 분석해 달라하니 이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IMF 금융위기 이후 온갖 자본시장 이슈를 경험했고, 그 때마다 “그 때도 이랬지”라며 반면교사로 삼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비교할 만한 대상은 없다는 것이다.
IT버블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일부 살아 남은 소수가 거대 테크 기업이 돼 시장 지배적 위치로 올라선 그 때와, 바둑이나 두는 컴퓨터 게임인줄 알았던 알파고를 넘어, 반도체와 전력과 같은 생산 인프라에서, 로봇·자동차 등 제조공정 전반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AI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실로 2026년 대한민국 자본시장은 유례없는 역사적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올 초 개장 이후 코스피는 단 한 차례의 조정도 없이 수직 상승하며 '꿈의 숫자'로 여겨졌던 5000 고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증권사들은 서둘러 코스피 고점을 높여잡는 분위기다. 올 상반기쯤 5000 도달을 점쳤다가, 1분기로 당기더니 내친김에 1월내 돌파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상승장의 가장 강력한 엔진은 단연 '피지컬 AI(Physical AI)'의 도래다. 반도체 산업은 그 중심에 있다.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차세대 반도체 품귀 현상이 지속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연일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 중이다. 과거의 사이클 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전 세계 AI 인프라의 핵심 공급처로 자리매김한 결과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현대차의 변신이다. 현대차는 더 이상 단순한 완성차 제조사가 아니다. 이번 'CES 2026'에서 확인했듯,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을 필두로 한 로봇 기술이 구체화되면서 시장은 현대차를 '로봇 대장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AI가 물리적 실체를 갖추는 시대에 한국의 제조 경쟁력이 곧 글로벌 스탠다드가 됐다. 여기에 글로벌 밸류체인의 최상단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방산과 조선 등 산업들도 국내주식 투자의 트렌드를 바꿔놨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도 한몫했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 온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장려 정책, 그리고 배당 확대 정책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질적인 원인이었던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마중물이 됐다. 기업들이 곳간에 쌓아둔 현금을 주주 환원에 적극적으로 투입하면서 외국인과 기관의 장기 투자 자금이 대거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한때 경제 펀더멘털의 위험 신호로 해석됐던 고환율 역시 이제는 '뉴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환율상승이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이익 규모를 키우는 촉매제로 작용하면서, 환율 변동성에 대한 시장의 내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고환율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경상수지 흑자 구조가 한국 경제의 강인함을 대변하고 있다.
물론 가파른 상승에 따른 경계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빚을 내 투자하는 이른 바 빚투가 사상 최대다. 1년 전과 16조원 수준이던 신용거래 융자 잔액은 현재 28조원까지 늘었다. 행여나 하락장으로 돌아서면 반대매매로 더 큰 충격으로 돌아올 것이란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다.
지난해 말부터 제기된 AI거품론도 아직 유효하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AI붐에 대한 자금 조달’보고서에서 “과거 빅테크 기업들은 높은 수익성을 바탕으로 내부 현금흐름을 통해 투자를 진행했지만, 지금 AI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리스, 대출 등 외부 부채 조달에 의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부채에 기댄 막대한 투자가 시장의 높은 수익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금융 시스템 안정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승장은 AI를 필두로 한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와 외국인·기관·개인 가리지 않는 강력한 수급, 국내 증시의 본질적인 재평가 작업, 여기에 강력한 정책적 뒷받침에 이뤄지면서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2026년 한국증시는 이제 막 새로운 역사의 첫 장을 넘겼다. 단기적인 변동성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우리 산업이 가진 본연의 가치에 주목해 볼 때다.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손희동 금융부장
sonn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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