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틈새’가 세계를 삼키는 법: 떡볶이라는 거대한 영토 [김희선의 글로벌 K-컬처 이야기⑪]
||2026.01.09
||2026.01.09
요즘 해외에서 K-푸드를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대화의 중심축이 달라졌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의하고 홍보하던 김치, 비빔밥, 불고기 같은 정석적인 한식에서, 떡볶이와 어묵, 김밥과 라면, 바나나우유와 삼각김밥처럼 사람들이 이미 자생적으로 소비하고 즐기는 생활로서의 음식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한식이 비로소 문화의 속도에 맞춰 진화하기 시작한 첫 장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떡볶이 같은 분식류 음식들은 복잡한 식사 예절이나 문화적 맥락을 묻지 않습니다. 배가 고플 때, 혹은 시간이 애매할 때 혼자서도 자연스럽게 집어 들 수 있는 이 음식들은 한국의 역동적인 도시 생활 방식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식탁 위 정적인 미식이 아니라, 도시의 틈새 시간을 메우는 기동성 있는 에너지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가장 ‘한국’다운 음식이 아닐까요.

학교 앞 문방구 옆, 종이컵에 가득 담아주는 떡볶이는 우리 세대에게 ‘내 돈으로 산 최초의 미식’이었습니다. 하굣길 10분의 틈새, 친구와 나누던 시시콜콜한 고민들 사이에서 떡볶이는 음식이라기보다 일상을 버티게 하는 정서적 인프라에 가까웠습니다. 한국인에게 떡볶이가 그토록 강력한 힘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특별한 기억 속에 남아서가 아니라, 기억조차 되지 않을 만큼 늘 우리 곁에 공기처럼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좋아해서 찾아 먹는 별미 이전에, 살다 보면 어느새 내 앞에 놓여 있는 삶의 배경 같은 음식 말이죠. 도시의 생태계와 운명을 같이 해온 떡볶이가 이제 한국이라는 국경을 넘어 세계의 도시인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저는 프로젝트 컨설팅과 해외 수출 준비를 위해 한 떡볶이 브랜드의 생산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저에게도 떡볶이는 그저 ‘길거리 음식’이라는 얄팍한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 들어선 순간 제 선입견은 조용히 무너졌습니다. 반도체 라인을 연상케 할 만큼 무결점으로 관리되는 제조 공정의 정갈함과 모든 것이 정교하게 통제되는 시스템에 경탄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압도한 것은 그곳을 가득 채운 ‘감각의 향연’이었어요. 떡을 제조하는 공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갓 쪄낸 밀의 구수하고 향긋한 곡향은 원재료가 가진 정직함을 증명하는 듯했고, 소스 가공 공장을 비롯해 공장 곳곳에서 풍겨오는 매콤하고 알싸한 고춧가루 냄새는 기분 좋은 자극이 되어 제 오감을 깨웠습니다. 청결한 공간에서 피어오르는 그 생동감 넘치는 냄새들은 이 음식이 얼마나 제대로, 또 진중하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책임자와의 대화가 기억납니다. 저희와 오랜 시간 떡볶이의 수출 준비에 매진하던 그의 성실함과 오너십에 감탄하고 있을 때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1호점 떡볶이 가게의 단골이었고 그에게 떡볶이 기업의 대표는 “떡볶이 오빠”였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주입된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축적된 생활의 서사가 이 음식과 일, 관계를 지탱하고 있는 큰 힘이 아닐까 싶더군요. 떡볶이 하나로 박물관까지 세운 기업은 떡볶이라는 음식이 가진 일상의 가치를 끝까지 믿었기에 살아남은 회사였습니다. 이들에게 떡볶이는 단순한 상품을 넘어 하나의 견고한 세계관이었습니다. 이 소박한 빨간 맛이 세계인의 식탁 위에서 제대로 차려진 한 끼의 ‘식사(Meal)’로, 또 각자의 빈틈을 메워줄 간식으로 제대로 대접받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결국 떡볶이의 진출은 단순히 맛의 수출을 넘어, 한국인이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공유하는 일이니까요.
곧 떡볶이는 경험 공학이 집약된 문화 상품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규격화된 소스와 떡이 주는 신뢰 위에, 소비자가 직접 토핑과 맵기를 설계하는 참여의 즐거움은 전 세계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공명합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목격한 그 정직한 제조 시스템에 적확한 시장 진입 전략이 더해진다면 떡볶이는 국경과 종교를 초월하는 가장 강력한 한식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식의 정전으로서가 아니라, 끈질기고 생동감 넘치는 ‘일상의 인프라’로서의 K-푸드는 어떤가요? 떡볶이는 그 일상이 어떻게 세계적인 유산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예리한 증거입니다. 빠르게, 정확하게, 그리고 함께 나누는 한국적 삶의 리듬이 떡볶이라는 작은 그릇에 담겨 전 세계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빈 살만이 떡볶이를 즐기고, 히잡을 쓴 여성들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매운맛에 열광하는 유튜브 영상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적 일상의 온기가 세계인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입니다. 저는 벌써 기대가 됩니다.

김희선Team8Partners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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