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향사랑기부제 3년, 관치(官治)의 둑을 넘어 민간 플랫폼의 바다로
||2026.01.08
||2026.01.08
지방소멸 대응의 골든타임, '고향사랑e음' 독점을 깨고 혁신의 생태계를 열어야 할 때
2026년,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4년 차를 맞았다. 제도 도입 초기 우려했던 것보다는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기부액 총량은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으나, '폭발적인 성장'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지역 특산품 소비 촉진과 지방 재정 확충이라는 소기의 성과 뒤에는 제도적 경직성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특히 기부자가 쉽고 편하게 기부할 수 있는 접근성의 한계, 매력적인 답례품 발굴의 정체는 여전한 숙제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냉정한 현실은 제도의 성패가 '민간 플랫폼'의 활성화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 모델로 꼽히는 일본의 고향납세(후루사토 노제) 사례를 보자. 일본이 거둔 10조 원 규모의 기적은 단순히 제도의 힘 만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후루사토초이스', '사토후루', '라쿠텐'과 같은 40여 개 이상의 민간 플랫폼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만들어낸 혁신이 있었다. 이들 민간 플랫폼은 단순한 중개 창구를 넘어, 지자체의 매력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을 입혀 기부자에게 '경험'을 판다. 사용자 편의성은 기본이고, 각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크라우드 펀딩 방식까지 도입하며 기부 문화를 다채롭게 꽃피웠다. 민간의 창의성이 제도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전체 생태계를 확장시킨 것이다.
"행안부는 심판이자 플레이어가 되려는 욕심을 버리고, 거대한 생태계의 정원사(Gardener)로 물러서야 한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제도 도입 논의 초기부터 민간 플랫폼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행정안전부는 보안과 공공성을 이유로 '고향사랑e음'이라는 단일 관영 플랫폼을 고집했다. 민간의 진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공공이 모든 것을 독점하려는 시도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는 투박했고, 접속 오류는 잦았으며, 기부 과정은 복잡했다. 마치 21세기에 20세기 초반의 관공서 창구를 온라인에 옮겨 놓은 듯했다. 뒤늦게 2024년부터 민간 플랫폼 일부 도입을 허용했으나, 그 과정 역시 행안부의 과도한 통제와 간섭으로 얼룩졌다. '민간 개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연동 방식의 제약과 과도한 수수료 규제 등 보이지 않는 진입 장벽들이 겹겹이 쳐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으로 도입된 민간 플랫폼들은 짧은 시간 안에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민간 특유의 기획력으로 단순 기부를 넘어 '지정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고, 매력적인 답례품 큐레이션을 통해 젊은 세대의 유입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향사랑e음'이라는 거대한 둑에 가로막혀 그 흐름은 미미한 실개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민간 플랫폼이 가진 데이터 분석 능력과 마케팅 역량이 100%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 문제가 아니다.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스스로 묶어두고 있는 꼴이다.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벗어나 '연결의 힘'을 믿어야
변화는 행안부의 근본적인 태도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행안부는 더 이상 플레이어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 시스템을 독점하고 통제하려는 '관리자(Controller)'의 마인드를 버리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촉진자(Facilitator)' 혹은 생태계를 가꾸는 '정원사(Gardener)'의 역할로 물러서야 한다. '고향사랑e음'은 필수적인 행정 처리를 위한 백엔드 시스템으로 남고, 기부자와 만나는 프론트엔드는 전면적으로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 보안 문제나 개인정보 보호는 기술적 가이드라인으로 통제할 문제이지, 진입 자체를 막을 명분이 될 수 없다.
모금 주체인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플랫폼의 관계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지자체는 갑(甲)이 아니라 민간 플랫폼을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민간 플랫폼은 지자체가 가진 고유한 자원과 지역문제를 발굴하여 상품화하고, 지자체는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을 투명하게 사용하여 기부 효능감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중앙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지방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진정한 지방분권의 모델이다.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의 관점에서 볼 때, 고향사랑기부제는 단순한 세금 제도가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생태계다. 이 생태계가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획일적인 관영 플랫폼 하나로는 복잡다단한 지역문제와 기부자의 욕구를 연결할 수 없다. 민간 플랫폼이라는 다양한 '연결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때, 지역문제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결국 고향사랑기부제는 단순한 모금 활동을 넘어,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투자의 장(場)으로 진화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규칙을 정하고 감시하는 역할에 머물고, 지자체와 민간이 손을 잡고 혁신을 주도하는 모델.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다. 2026년은 그 골든타임이다. 행안부가 쥐고 있는 주도권을 과감히 민간에 이양할 때, 비로소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 소멸을 막는 든든한 방파제가 될 것이다.
권선필 (목원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한국지방자치학회 고향사랑기부제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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