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삼국지에서 보는 외교의 힘
||202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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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양, 손유동맹(孫劉同盟)을 이끌어내다
사마의, 손유동맹(孫劉同盟)을 깨뜨리다
세 치 혀, 정세를 역전시킨다.
상병벌모 기차벌교(上兵伐謀 其次伐交)

대부분의 우리는 삼국지를 익히 알고 있다. 심지어 대학입시의 논술을 대비하는 도서로 이문열의 《삼국지평역》이 추천도서로 꼽힐 정도니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성인은 삼국지 내용을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지에서는 최고의 책사, 전략가 제갈 양을 얻기 위해 유비가 삼고초려 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비를 처음 대면한 제갈 양이 ‘천하삼분지대계’를 펼치는 대목도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성인이면 누구나 인재를 얻기 위해 세 번 누추한 초가를 찾는다는 ‘삼고초려’, 먼저 오나라와 동맹을 맺어 기반을 잡은 뒤 천하를 셋으로 나눴다가 역적 조조를 친다는 ‘천하삼분지대계’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잊고 넘어가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우선 적수공권 빈털터리 유비가 강동의 패자 손권과 거의 대등한 입장에서 동맹을 맺는 장면이다. 서기 208년, 적벽대전 직전의 일이다. ‘설전군유(舌戰群儒)’와 ‘격권(激權)’이다. 다음 11년 뒤 사마의가 오나라 조정에 들어가 손유 동맹을 파기하도록 설득한다.
제갈양, 손유동맹(孫劉同盟)을 이끌어내다
오나라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장소는 “유비가 조조에게 패해 도망친 주제에 강동의 패자 오나라와 무슨 동맹이냐”고 공격한다. 제갈량은 “인(仁)을 지키느라 잠시 물러난 것일 뿐, 역적의 위세에 겁먹은 비겁한 선비들과 대세를 논할 수 없다”고 반격한다. 요즘 표현으로, 전력의 강약 논쟁을 인의(仁義) 대 비겁한 불충(卑怯不忠)의 논쟁으로 프레임을 전환한 것이다. 한 순간에 ‘비겁한 불충의 무리’가 된 오나라 중신들은 더 이상 항변할 수 없었다. ‘설전군유(舌戰群儒)’다.
제갈 양은 아무런 공업 없이 오나라를 물려받는 손권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제갈량은 손권을 만나서는 먼저 조조의 군세를 부풀려 설명하며, 오나라를 보전하려면 일찍 항복하라 권한다. 손권이 왜 유비는 항복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영웅은 쉽게 항복하지 않지만 소인배는 구차한 삶을 선택한다”고 대답한다. 아버지 손견이나 형 손책과는 달리 아무런 전공이 없었던 손권은 자존심이 상했다. ‘격장지계(激將之計)’, 상대 장수를 흥분시켜 내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고도의 심리전술이다.
손권이 주전론(主戰論)에 가까워진 듯하자, 수전에 약한 조조군의 약점과 유비군의 맹장들을 비교하고, 오나라 수군의 강점을 들어 승리를 예고한다. 군사 동맹을 추구하면서 처음으로 군사력과 승리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오나라의 군권을 쥔 주유에게는 조조의 아들 조식의 시 동작대부(銅雀臺賦)를 살짝 비틀어 들려주면서 성급한 주유를 격동시킨다. ‘동남의 이교(二喬)를 끼고’라는 대목인데, 언니 대교는 손책의 미망인이었고 동생 소교는 주유의 부인이었다.
사마의, 손유동맹(孫劉同盟)을 깨뜨리다
그로부터 11년 뒤,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형주를 나와 위, 오 접경인 번성을 공격하자 조조부터 위나라 제장수들은 벌벌 떨었다. 조조는 물론 위나라 장수들은 관도 대전에서 관우가 보여준 놀라운 ()을 눈으로 확인한 터였다. 위왕 조조는 손유 동맹을 파기하고 관우의 배후를 치도록 오나라를 설득ㅎ라기 위해 책사 사마의를 파견한다. 사마의는 먼저 관우라는 공동의 위협을 강조하며 오나라의 공포심을 부추겼다. “관우가 번성을 함락한 뒤 먼저 어느 나라를 치겠느냐? 먼 위나라보다 가까운 오나라 아니겠나?”
오가 조조를 견제하려고 촉과 동맹을 맺었으나, 형주를 돌려주지 않은 유비에게 항상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사마의는 인간의 탐욕을 자극했다.
“위나라가 북에서 관우의 주력을 붙잡아 둘 테니, 오나라가 비어있는 형주를 쳐서 가져라.” 사마의는 당장의 실리와 함께 장기적 중원 질서도 제시했다.
“제갈양의 천하삼분지대계는 허구다. 위와 오가 손잡고 촉을 먼저 멸한 뒤, 장강 북쪽은 위나라, 장강 남쪽은 오나라로 양분하자.” 결국 오나라는 여몽을 대장으로 형주를 기습하고 앞뒤로 적을 맞은 관우는 맥성에서 사로잡혀 목이 잘린다. 관우의 죽음을 기점으로 촉은 급속하게 쇠망의 길을 걷게 된다.
세 치 혀, 정세를 역전시킨다
두 사례에서 우리는 소중한 교훈을 얻는다. 외교는 큰 돈 들이지 않고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고 ‘세 치 혀’로 국면을 크게 전환한다. 약자 유비의 대변인 제갈양은 손유동맹을 성공시켜 형주를 얻고 천하삼분지대계를 실현한다. 손유 동맹이 아니었다면 천하삼분지대계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삼고초려도 무의미했을 것이다. 강자 조조의 대변인 사마의는 손유동맹을 파기시키고 위나라의 천하통일을 위한 토대를 닦는다. 제갈양도 사마의도 세 치 혀로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세 치 혀라고 단지 세 치 혀만은 아니다.
전략과 전술 싸움이요, 지식과 정보 싸움이며, 인간의 자존심과 탐욕, 공포를 이용한 고도의 심리 전쟁이다. 소프트파워 싸움이다. 제갈양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제시하면서, 현대 용어로 프레임(Frame) 전쟁을 벌여 오나라 중신들을 제압했다. 그리고는 선전 선동에 의한 심리전까지 동원해 손권과 주유를 설득했다. 사마의는 보다 단순하지만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과 탐욕이라는 현대 정치 용어로는 권력정치(Power Politics)로 목적을 달성했다. 그래서 외교는 소프트파워의 정수다.
상병벌모 기차벌교(上兵伐謀 其次伐交)
그래서 손자는 모공편(謀攻篇)에서 말했다. 상병벌모 기차벌교 기차벌병 기하공성(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이라고. 해석하면 ‘최상의 전략은 적의 전략을 깨뜨리는 것이며, 적의 외교를 끊는 것이 다음이고, 적의 군대를 치는 것이 그 다음이며, 적의 성을 치는 것은 최하책이다.’ 그리고 두 사례에서 살폈듯이 상대의 큰 전략을 깨는 첫 걸음은 외교 전략이다. 우리가 중국 고대의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를 배웠지만, 기억나는 구체적인 전략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나 ‘합종연횡(合從連橫)’ 정도다. 원교근공도 외교 전략이요 합종연횡도 외교 전략이다. 그만큼 외교는 고대 중국에서부터 중시되었다.
우리도 이제는 국내 정치 이슈로 아옹다옹할 것이 아니라, 외교에 눈뜰 때가 되었다. G-7버금가는 국가다운 외교를 할 때가 되었다. 과연 우리 지도자들이 외교를 잘 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소프트파워를 축적했는가? 한편 언론도 국민도 외교를 더 잘 알아야 한다. 대통령 기자회견이 정치 공방이나 정치권 가십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와 정치권에 더 나은 외교 역량을 요구해야만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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