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차도 잡았다”… ‘인공 태양’ 완성한 조선업 최연소 명장
||2026.01.02
||2026.01.02
[편집자주] 이직이 흔한 시대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한 직장에서 계속 근무한 사람은 10명 중 4명에 그쳤다. 특히 MZ세대(1980~2000년대생)는 안정성보다 성장 가능성과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며 직장을 옮기는 데 주저함이 적다. 이런 시대에 이동 대신 한 우물을 택한 젊은이들이 있다. 속도보다 깊이, 유행보다 숙련을 선택한 ‘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교실 책상 앞에선 안 가던 시간이, 처음 용접기를 잡으니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어요. 돌이켜보면 성취욕이 자격증 14개와 석사 학위, 그리고 명장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고민철(43) HD현대중공업 기원은 지난해 9월 대한민국 명장(판금·제관 부문)으로 선정됐다. 대한민국 명장은 15년 이상 현장 경력과 독보적인 숙련 기술을 보유한 자에게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영예’다. 현재 92개 직종에 719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1982년생인 고 기원은 가장 어리다.
고 기원은 조선업계 최초의 ‘부자(父子)’ 명장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 고윤열 명장도 2004년 판금·제관 부문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고 기원은 “아버지가 명장이 되는 모습을 보며 조선업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2012년 입사한 고 기원의 주 무대는 ‘인공 태양’이라 불리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이다.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초정밀 구조물인 ITER 진공 용기를 제작하며, 그는 측정 장비인 ‘레이저 트래커(Laser Tracker)’를 가공 단계부터 전격 도입하는 혁신을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HD현대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ITER 진공 용기를 납품하며,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새해 기사에서 기원으로 승진한 고 기원은 소형모듈원자로(SMR)라는 미래 먹거리 분야로 영토를 넓힌다. ‘후배 명장’ 양성도 병행하고 있다. 조선업 ‘슈퍼 사이클’ 속에서도 이어지는 현장 인력난을 기술 전수로 돌파하는 꿈을 꾼다. 다음은 고 기원과의 일문일답.
―판금·제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인가.
“종이접기에 비유하면 쉽다. 도면에 따라 철판을 자르고, 휘고, 조립해 입체적 구조물을 만드는 일이다. 선체부터 엔진룸, 탱크, 파이프라인까지 배를 구성하는 모든 골격을 세우는 조선업의 뿌리 기술이다.”
―‘레이저 트래커’ 도입이 명장 선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들었다.
“레이저 트래커는 3차원 좌표를 추적하는 초정밀 측정 기기다. 일반 선박은 허용 오차(공차)가 100㎜ 수준이지만, ITER 진공용기는 1~3㎜라는 극한의 정밀도를 요구했다. 용접 열기만으로도 생길 수 있는 오차를 잡아내기 위해 2014년부터 레이저 트래커를 직접 배워 가공 단계에도 적용했다. 덕분에 HD현대중공업이 2020년 전 세계 최초로 ITER 진공용기를 납품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조선업계 최초의 ‘부자(父子) 명장’이다. 아버지의 반응은.
“무뚝뚝한 분이라 ‘수고했다. 이제 더 잘해야지’라고 하셨다. 오히려 앞으로 명장이 됐으니 언행을 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짧은 한마디에서 깊은 격려를 느꼈다. 2004년 아버지가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고된 노동으로만 보였던 아버지의 작업복이 수십 년의 땀과 열정이 녹아든 ‘훈장’임을 깨달았다. 그때의 결심이 용접학원으로, 그리고 조선소로 이끌었다.”
―입사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당시 현대중공업 지원 자격을 위해 2007년 협력사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채용이 끊겨 군무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2011년 채용이 재개된 후 세 번이나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포기하지 않고 네 번째 도전한 끝에 2021년 입사했다. 간절함이 통했다.”
―조선업 ‘슈퍼 사이클’에도 현장 인력난은 여전하다.
“고등학교 기능 대회 감독을 나가 봐도 용접이나 철골 부문 선수가 없다. 상을 주겠다고 해도 지원을 안 한다. 젊은 세대가 자동차나 반도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멘토를 하면서 ‘5년만 고생하면 베테랑이 된다’고 응원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 일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인력 문제를 해소할 복안이 있다면.
“결국 ‘안전’이다. 옛날에는 안전과 공정이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전해야 마음이 편하고, 능률도 오른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조선소 어딜 돌아보나 ‘안전’ 표어가 붙어 있고, 기계화 장비도 많이 도입해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속된 말로 ‘노가다판’은 아니다. 환경이 계속 좋아지면 젊은 인재들의 선호도도 차츰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회사의 미래 먹거리인 SMR 사업에 제관·판금 전문가로 참여한다. 회사가 수주를 잘해 오면 열심히 뒷받침하겠다. 개인적으로는 후배 산업 명장을 키우는 일을 하고 싶다. 현재 회사에 명장이 총 3명 재직 중인데, 손기술로만 보면 명장 못지않은 동료가 현장에 많다. 다만 명장으로 인정받으려면 외부 교육도 받아야 하고, 기술 전수 등의 활동도 해야 하는데 현업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회사에서 관련 교육 체계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장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장인은 ‘잇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의 맥과 세대, 마음과 마음을 이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아버지 세대가 피땀 흘려 만든 조선 기술을 토대로 레이저 트래커를 현장에 도입한 것처럼, 앞으로 미래 기술을 이어가 후배들에게 더 나은 환경과 비전을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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