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아닌 ‘이름’을 산다… 중국 미술시장의 가격 논리
||2026.01.01
||2026.01.01
미술시장을 이야기할 때, 이제 중국은 빼놓기 어려운 시장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국제 미술시장에서 조용한 주변부에 있었던 중국이 이제는 세계 경매 시장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다. 아트프라이스(Artprice)의 글로벌 미술시장 보고서(The Art Market in 2023)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미술품 경매 매출은 약 49억 달러 규모로 집계되며,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매 시장으로 복귀했다. 이 숫자는 예술이 더 이상 일부 수집가의 취미 영역이 아니라 거대한 산업과 자본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급격한 성장의 배경을 단순히 “경제가 커져서 돈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물론 경제적 부의 축적은 시장 확대를 촉발한 중요한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미술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몇 해 전 런던의 한 경매사 직원이 남긴 흥미로운 말 한마디는 중국이 예술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잘 보여준다. “중국 컬렉터들은 작품보다 서명을 산다.” 즉, 작가의 예술적 성취보다 그 이름이 주는 상징성이,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보다 그 뒤에 있는 사회적 맥락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경매사 직원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리핑 저우(Liping Zou) 외 3명의 연구진이 쓴 ‘Art for Art’s Sake: An Exploration of the Chinese Art Market’은 중국 미술시장의 독특한 구조와 동인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2000년대 이후의 대형 경매 데이터를 정리하고, 작품의 크기·재료·장르뿐 아니라 작가의 출신, 학력, 소속 미술단체와 같은 사회적 변수들을 함께 고려했다. 그 결과 드러난 것은 단순히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관계와 신호를 위한 예술’의 세계였다.
서구의 미술시장이 작품 중심의 개별적 평가 구조를 가진다면, 중국 시장은 ‘이중 구조(dual structure)’를 보였다. 즉, 예술적 가치와 금융적 가치가 분리되지 않은 채 상호 의존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투자재이자 지위재로 인식되며, 작가의 사회적 네트워크(예컨대 미술협회 회원 여부나 국가 기관과의 연계)가 낙찰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단순한 시장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호이론(signal theory)의 맥락에서 읽힌다. 예술품은 미학적 즐거움의 대상이자, 구매자의 지위를 암시하는 상징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Zou 외 연구진의 분석은 통계적으로도 이를 뒷받침한다. 예술가의 공적 인지도와 제도적 연결성은 작품의 크기나 재료보다 높은 설명력을 보였다. 반면 서구에서 가격 형성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비평가의 평가나 전시 이력은 유의미하지 않았다. 즉, 중국 시장에서는 ‘예술성’보다는 ‘사회성’이 더 강한 가격 결정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예술품의 교환가치가 예술 내부의 미학보다 사회적 네트워크와 제도적 신호를 통해 형성된다”는 말로 요약한다.
이러한 특성은 ‘문화적 자본’의 축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의 부유층에게 미술품은 단순한 투자 수단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신뢰와 위신을 드러내는 매개체다. 예를 들어, 정부 기관이 주최하는 전시에 초청받은 작가의 작품은 경매에서 더 높은 프리미엄을 받는다. 이는 미술품의 ‘예술적 품질’이 아니라 ‘공적 승인(public endorsement)’을 받은 상징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연구가 중국 미술시장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그린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중국 미술시장의 성장 배경을 ‘예술의 금융화’와 ‘문화적 자부심’이라는 두 축으로 읽는다. 중국의 부상한 중산층은 서구 미술을 단순히 모방하기보다는, 자국의 미학과 상징을 자산화하며 세계 무대에 진출하고 있다. 즉, 예술이 자본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중국 특유의 사회적 질서와 가치관이 함께 반영된 것이다.
이 논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시장 구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의 ‘사회적 작동 방식’을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작품의 진위나 화풍 분석보다, 예술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어떻게 가치가 매겨지게 되는지를 보여준 연구라 할 수 있다. 예술이 언제나 시장과 제도의 언어 속에서 해석되어 왔다면, 중국 미술시장은 그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중국은 ‘작품’을 산다기보다, ‘작품이 가진 힘’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무엇을 사고 있을까? 작품의 의미인가, 아니면 작가의 이름인가.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교수, 메타버스금융랩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위험관리·ESG금융·대체투자다. 금융위원회 테크자문단, 글로벌 ESG, 한국탄소금융협회 ESG금융팀장을 포함해 현업 및 정책에서 다양한 자문 활동을 한다.
류지예 연구원은 경북대학교 경영대학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 연구주제는 미술시장, 예술품 거래데이터분석이며 메타버스, NFT등 예술산업 관련 신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rjy1524@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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