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다 [줌인IT]
||2026.01.01
||2026.01.01
최근 한국의 자율주행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자율주행 경쟁의 핵심인 ‘속도전’에서 미국과 중국이 이미 선두를 굳힌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제도라는 늪에 발목이 잡혀 기술을 충분히 시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누가 먼저 도로 위에서 기술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상황에서, 한국은 낡은 규정과 제도로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 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은 자율주행을 단순한 교통 안전 문제로 보지 않는다. 미국은 연방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과 주(州)별 규제 유연성을 결합해 기업들이 제한적 조건에서 기술을 시험하고 실도로 데이터를 쌓을 수 있도록 했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풀 셀프 드라이빙(FSD)’은 이런 제도적 토대 위에서 빠르게 진화해 왔다.
실제로 테슬라는 2024년 기준 미국에서 약 50만 대 이상의 차량에 FSD 기능을 활성화해 방대한 실도로 데이터를 생성하고 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 시장에서도 미국 생산 모델에 한해 ‘감독형 FSD’ 서비스를 시작하며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한층 더 과감하다. 중국 정부는 최근 베이징과 충칭 등 일부 도시에서 레벨3 자율주행차의 도로 주행을 공식 허용했다. 창안자동차 산하 션란자동차의 ‘SL03’과 베이징자동차의 아크폭스 ‘알파S’는 최고 시속 50~80킬로미터(㎞) 구간에서 조건부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정부가 사고 책임과 운행 조건을 명확히 규정하면서 기업들은 양산과 판매를 전제로 기술 검증과 상용화에 속도를 낼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반면 한국의 규제는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UN 1958 협정에 따른 자동차 안전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나, 관련 규정은 여전히 레벨2~3 자율주행 기술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어 기술 고도화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사실상 레벨4 이상 자율주행의 일반 도로 주행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적용으로 주행 중 영상 데이터를 수집할 때 얼굴과 번호판을 모자이크 처리해야 해 보행자와 차량 인식 정확도가 떨어지고, 데이터 활용도 역시 낮아진다”며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제 환경은 국내 완성차 제조사의 기술 개발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도로 주행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서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2022년 레벨3 자율주행 양산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까지 실제 차량 적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네시스 G90과 기아 EV9에 적용될 예정이던 ‘HDP(Highway Driving Pilot)’ 도입 시점 역시 불투명한 상태다.
관련 법·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2026년에도 글로벌 제조사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일부 도심과 고속도로에서 레벨3 자율주행이 일상화되고, 소비자는 차량 브랜드보다 ‘자율주행 경험’을 기준으로 차를 선택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반면 한국은 기술 역량을 갖추고도 상용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채, 실증 데이터만 쌓는 후발 주자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다. 말로만 ‘미래차 전환’을 외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지 냉정하게 점검하고 국내 완성차 기업이 가진 기술력을 시험하고 펼칠 수 있는 ‘판’을 마련해야 한다.
자율주행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경쟁국들은 이미 ‘허용할 것인가’를 넘어 ‘얼마나 빠르게 허용할 것인가’를 놓고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과 같은 규제 기조를 유지한다면, 2026년에도 한국은 자율주행 시장에서 ‘추격자’가 아닌 ‘관망자’에 머물 수밖에 없다.
미래 모빌리티로의 전환기에 접어든 2026년은 자율주행의 빗장을 열고 경쟁국을 따라잡기 위한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속도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기술 검증과 데이터 확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지체는 곧 기회 상실이며, 격차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벌어질 수 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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