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안정, 지갑은 불안’…소비자들 “생활물가는 내려간 적이 없다”
||2025.12.31
||2025.12.31
5년 만에 최저 물가…숫자는 안정세
장바구니·외식비는 여전히 부담
평균의 착시, 자주 쓰는 돈이 문제
체감 개선 없인 소비 회복도 한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체감 물가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생활물가는 여전히 비싸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통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더욱 분명해지는 모습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116.61(2020=100)로 전년보다 2.1% 상승했다.
연간 소비자물가는 2022년 5.1%를 기록한 이후 2023년 3.6%, 지난해 2.3% 등으로 오름폭이 축소됐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수백 개 품목의 가격 변동을 가중 평균해 산출되는 지표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 빈도가 낮은 품목의 가격 하락과 같은 일시적인 가격 변동이 전체 수치를 끌어내릴 수 있어, 실제 체감 물가와 간극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석유류와 농축수산물 등이 물가 상승을 주도했지만, 일부 농산물 가격 하락이 평균을 끌어내리면서 전체 물가는 낮게 나타났다. 축산물·수산물·가공식품·석유류 등 소비 빈도가 높은 품목의 상승 부담은 통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며 체감 물가와의 괴리가 발생했다.
품목별로 농축수산물 물가는 전년보다 2.4% 올랐다. 농산물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으나, 축산물(4.8%), 수산물(5.9%)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다. 그 중에서도 고등어(10.3%), 돼지고기(6.3%), 수입쇠고기(4.7%), 귤(18.2%), 찹쌀(31.5%) 등의 상승률이 높았다.
여기에 공업제품 역시 전년보다 1.9% 올랐다. 가공식품(3.6%), 석유류(2.4%), 섬유제품(2.0%), 기타 공업 제품(1.1%) 등이 오름세를 견인했다. 가공식품 중에서는 빵(5.8%), 커피(11.4%) 등의 오름폭이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공식 통계상 물가 상승률이 둔화됐지만, 체감 물가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소비 현장에서는 “먹고 마시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늘었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체감과 통계 간 괴리는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 지출은 선택과 집중 형태로 재편됐고, 외식과 식료품처럼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지출에 대한 민감도가 오히려 높아졌다.
특히 식품과 외식 물가는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데다 가격 변동이 생활 전반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물가지수에는 다양한 품목이 고르게 반영되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가장 자주 접하는 품목군의 가격 흐름이 체감 물가를 좌우하는 구조다.
여의도에 근무하는 직장인 A(40대)씨는 “통계상 물가가 안정됐다고 하지만, 출근길에 커피 한 잔을 사고 점심을 먹는 데 드는 비용은 체감상 계속 늘고 있다”며 “생활에서 가장 자주 쓰는 식비와 외식비가 내려가지 않는 이상 물가가 잡혔다는 말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CPI는 가계의 전체 소비 구조를 반영해 산출되는 지표인 만큼, 식료품·외식비 외에도 주거비와 서비스 요금 등이 함께 반영된다. 이로 인해 일상에서 반복 지출되는 품목의 가격 상승이 체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보다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업계 역시 물가 통계와 체감 사이의 간극을 체감하고 있다.
식품·외식업계는 공식 물가 지표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가격 인상에 대한 사회적·정책적 부담이 여전히 크다고 보고 있다. 원재료비와 인건비, 물류비 등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수익성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공식 물가 지표가 안정됐다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은 오히려 커질 수 밖에 없다”며 “원재료비와 인건비, 물류비 부담이 여전한 상황에서 가격을 쉽게 조정하기 어려워 수익성 압박이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소비자 체감 물가는 높지만 통계상 물가는 안정된 것으로 나오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상승을 가격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익률이 낮아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 흐름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통계 수치 뿐 아니라 체감 물가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한 평균 수치가 아닌,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품목군의 가격 안정 여부가 물가 인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12월에도 물가 상승률이 2%를 넘는 상황을 두고 ‘안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국제 유가는 안정됐지만, 환율 영향으로 국내 유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환율로 인해 오른 물가가 상당한 만큼, 진정한 물가 안정이라면 최소한 2% 이내로는 들어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환율 안정”이라며 “환율이 안정돼야 수입 물가가 내려가고, 물가 안정과 소비 촉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란봉투법이나 법인세 인상 등 투자 유인을 약화시키는 정책은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 유입과 자본 유출 방지를 중심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생활물가에 대한 체감은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훨씬 크다”며 “과거 누적된 인상분이 워낙 높아 전년 대비 상승률 만으로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소득은 제자리인데 필수 소비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체감 물가를 낮추는 가장 확실한 해법은 소득 증가와 경제성장과 내수 회복의 동반이다. 과거에도 물가는 올랐지만 소득이 더 빠르게 늘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고,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가장 큰 만큼 복지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를 고려하면 환율 안정 정책 역시 병행돼야 한다”고 일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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