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블록버스터에 韓기술 담은 박순재 알테오젠 의장 [2025 이사람]
||2025.12.31
||2025.12.31
한국 바이오 산업은 오랫동안 ‘기술은 있지만 돈을 못 버는 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임상 성공이나 기술수출 발표가 나와도 실적은 뒤따르지 못했고, 대다수 기업은 연구개발(R&D) 비용 부담에 허덕였지만, 이 공식은 올해 기점으로 알테오젠이 깨뜨렸다.
알테오젠은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에 자사 원천기술을 안착시키며 ‘기술이 곧 실적’이라는 가장 어려운 숙제를 풀어냈다. 그 중심에 박순재 알테오젠 의장이 있다.
알테오젠의 전환점은 MSD(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였다. 키트루다는 연간 매출이 40조원을 웃도는 세계 1위 의약품이다. 기존 정맥주사(IV) 방식의 키트루다는 투약 시간이 길고 병원 방문이 필수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알테오젠의 재조합 히알루로니다제 ‘베라히알루로니다제 알파(ALT-B4)’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했다. 약물이 피하 지방층에서도 빠르게 흡수되도록 돕는 이 기술 덕분에 키트루다는 피하주사(SC) 제형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202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키트루다 SC 제형을 승인하면서, 알테오젠의 기술은 실험실을 넘어 글로벌 상업화 단계에 진입했다. 유럽에서도 품목 허가가 이어지며 알테오젠은 미국·유럽 허가에 따른 마일스톤으로 각각 수백억 원대 기술료를 수령했다.
시장에서는 미국 출시 이후 연간 로열티 수입이 1조원 규모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바이오텍 최초로 글로벌 블록버스터 매출에 직접 연동되는 구조’를 만들어낸 셈이다.
업계는 알테오젠의 이 같은 성과를 단순 운으로 보지 않는다. 박 의장은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MIT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정통 연구자다. 귀국 후에는 LG화학(옛 LG생명과학)에서 25년간 근무하며 성장호르몬 치료제 ‘유트로핀’ 개발을 주도했고,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글로벌 기술이전 실무를 모두 경험했다.
이후 한화와 바이넥스를 거치며 경영자로서의 감각을 쌓은 뒤 2008년 알테오젠을 창업했다. 연구와 사업, 기술과 시장을 동시에 이해하는 드문 이력이다.
그가 일찍부터 주목한 것은 ‘약의 효능’보다 ‘투약 방식’이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동일 성분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투약 편의성은 곧 시장 경쟁력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박 의장은 기존 의약품을 개선하는 바이오베터 전략을 택했고 성장 가능성이 큰 피하주사 시장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해당 분야의 선두주자였던 할로자임테라퓨틱스를 집요하게 분석했고, 후발주자라도 더 유연한 라이선스 전략과 독립적인 플랫폼 구조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알테오젠의 플랫폼 계약은 특정 품목에 대한 독점권을 제한적으로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는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활용도가 높고, 알테오젠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다수의 블록버스터에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구조다.
이 전략은 키트루다 이후 아스트라제네카와의 대형 계약으로 이어졌다. 알테오젠은 2025년 아스트라제네카와 총 13억5000만달러(약 2조원)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3개 항암제의 SC 제형 전환 권리를 제공했다.
알테오젠의 급성장은 자본시장에서도 뚜렷한 변화를 낳았다. 회사는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오른 뒤, 2025년 말 코스피 이전 상장을 결의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이동이 아니라 ‘연구 중심 바이오텍’에서 ‘글로벌 상업화 기업’으로 체급을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박 의장은 사업 성과가 실적으로 가시화되는 시점에 맞춰 이전 상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코스피 이전을 통해 기관·외국인 자금 유입과 글로벌 파트너십 신뢰도를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다. 할로자임이 알테오젠의 제조공정 특허에 대해 미국에서 무효 심판을 청구하며 특허 분쟁이 불거졌다. 그러나 이는 ALT-B4 물질특허와는 무관한 제조방법 특허에 관한 사안으로, 사업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증권가에서는 해당 분쟁이 기존 파트너십이나 상업화 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박순재 의장의 시선은 이미 ‘포스트 ALT-B4’로 향해 있다. 그는 ALT-B4가 향후 5~10년간 알테오젠의 실적을 책임질 핵심 축이 될 것으로 보면서도, 단일 플랫폼 의존에 머물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장기 지속형 플랫폼, 차세대 바이오베터 기술,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신규 파이프라인 도입 등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글로벌 기준 공장 설계도 이미 시작됐다.
박 의장은 올해 12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지만 이사회 의장 및 사내이사는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그는 최대주주 지위도 그대로여서 회사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앞으로도 장기 비전·전략 방향 설정과 차세대 파이프라인 발굴에 주력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박순재 의장은 ‘기술수출’이라는 이벤트를 넘어 한국 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의약품 매출 구조 안으로 실제 편입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했다”며 “임상 성공보다 어려운 ‘상업적 성공’을 이뤄낸 그의 행보는, K-바이오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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