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위기서 살아난 ‘애엽 추출물’… 효과 없어도 급여 적용 논란 [아듀 2025]
||2025.12.27
||2025.12.27
임상적 유용성 근거가 없다는 정부 평가로 건강보험 급여 퇴출 위기에 몰렸던 ‘애엽 추출물’ 성분 위염 치료제가 약가 인하를 조건으로 급여를 유지하게 되면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유지된 상태에서 가격만 낮춰 급여를 연장한 결정이 ‘제도의 원칙을 흔든 선례’라는 비판과 함께 건강보험 재정 운용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애엽 추출물은 쑥을 원료로 한 천연물 의약품으로, 동아에스티의 ‘스티렌’을 비롯해 대원제약, 제일약품, 종근당 등 50여개 제약사가 70여개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애엽 추출물은 급성·만성 위염의 위점막 병변 개선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 투여 시 위염 예방 등을 적응증으로 내세워 왔으며, 2024년 외래 처방액만 1298억원에 달하는 대표적 다빈도 처방 약제다.
논란의 출발점은 지난 8월 열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였다. 약평위는 애엽 추출물에 대해 위염 치료에서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할 근거가 없다며 급여 적정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상 급여 퇴출 수순으로 해석되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제약사들이 즉각 이의신청을 제기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12월 4일 열린 약평위 재심의에서 정부 판단은 ‘임상적 유용성 근거 없음’에서 ‘불분명’으로 수정된 것이다. 교과서나 임상진료지침 수준의 근거는 없지만 제한적인 임상 연구 문헌이 존재한다는 이유였다.
동시에 제약사들이 약가를 자진 인하해 비용효과성을 충족할 경우 급여 적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임상 효과에 대한 평가 자체는 바뀌지 않았지만, 가격을 낮추면 급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이 같은 판단은 12월 23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최종 확정됐다. 건정심은 애엽 추출물의 ‘사회적 요구도’를 높게 평가하며 급여 유지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애엽 추출물 성분 74개 품목의 보험상한가는 2026년부터 평균 14.3% 인하된다. 제약사들은 급여 생존의 대가로 연간 150억원이 넘는 처방액 감소를 감수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급여 퇴출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애엽 추출물은 하루 2~3회 복용하는 구조로 고령층 처방 비중이 높고, 대체 약물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급여 중단 시 의료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는 “효과가 불분명한 약을 가격만 낮춰 계속 쓰게 하는 것은 건강보험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반발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임상적 유용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약제가 불과 4개월 만에 ‘불분명’으로 바뀐 이유와 근거가 공개되지 않았다”며 “약가 인하에 따라 비용효과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요구도를 높게 평가한 과정 역시 투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애엽 추출물이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약”이라며 “국내 제도만의 예외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은 애엽 추출물 하나의 문제를 넘어 급여적정성 재평가 제도 기준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임상적 유용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약제라도 사회적 요구와 처방 현실, 재정 부담을 이유로 급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 논리가 반복되면 앞으로 급여 재평가는 ‘가격 협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건보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임상 근거 중심 원칙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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