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전기차 정책 흔들리자 현대차도 속도조절
||2025.12.24
||2025.12.24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전략이 변곡점에 접어들고 있다. 주요 국가들이 탄소중립 목표는 유지하면서도 전기차(EV) 전환 속도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바꾸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생산·투자 전략을 재편하는 모습이다. 특히 현대자동차·기아는 전기차 판매 둔화와 정책 불확실성에 대응해 하이브리드(HEV)를 중심으로 전동화 전략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확대를 주도해 온 미국은 최근 정책 방향에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공제 제도를 당초 계획보다 7년 앞당겨 폐지했다. 전기차 보급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다, 재정 부담이 커졌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북미 전기차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온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투자 규모와 생산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세액공제 폐지가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켜 판매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책 연속성이 훼손될 경우 대미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과거에도 친환경차 보조금 축소가 완성차 업체들의 투자 계획 조정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세액공제 폐지는 장기적으로 전기차 산업 전반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며 “미국 전기차 시장이 당분간 냉각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역시 내연기관차 퇴출 로드맵을 사실상 수정했다. EU는 당초 2035년까지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00% 감축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며 내연기관차 퇴출을 예고했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와 자동차 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감축 목표를 2021년 대비 90%로 완화했다. 이에 따라 하이브리드 등 일부 내연기관 차량의 시장 수명이 연장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월에는 독일·이탈리아 등 주요 자동차 생산국들이 탄소중립 목표는 유지하되, 유로7 배출가스 규제 적용을 완화하고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EU는 1992년 유로1 도입 이후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해 2014년부터 유로6를 시행해 왔으며, 2022년 11월 유로7 규제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기술적·비용적 부담이 크다는 업계 반발로 지난 2024년 최종 합의 과정에서 규제 강도가 일부 낮아졌다.
최근에는 탄소배출 규제 적용 시점 자체도 유예됐다. EU는 올해부터 신차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 상한선을 2021년 대비 15% 낮추고, 이를 초과할 경우 그램(g)당 95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기준 충족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3년 유예 방안을 마련했다.
이처럼 글로벌 탄소배출 규제가 잇따라 조정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수출 전략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북미와 유럽 시장에 전동화 투자를 집중해 온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전환 속도를 조절하며 전략 수정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2일 글로벌 전동화 전략 조정의 일환으로 울산공장의 전기차 생산 속도를 낮추기로 결정했다. 주력 전기차인 아이오닉 5와 코나 일렉트릭을 생산하는 울산 1공장 12라인의 시간당 생산량(UPH)을 기존 27.5대에서 17.5대로 조정했다. 해당 조치는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부터 차체·도장·의장 공정에 적용됐으며, 본격적인 생산량 조절을 위한 설비 공사는 2026년 1월 초 진행될 예정이다.
생산 조정에 따른 인력 재배치도 병행된다. 울산공장 노사는 12라인 생산직 인력의 약 20%에 해당하는 70여명을 다른 생산 라인으로 전환 배치하기로 했으며, 2026년부터는 촉탁계약직 채용 규모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인력 구조를 조정할 방침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가 생산 현장과 고용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는 감소한 전기차 수요를 하이브리드로 상쇄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 회사는 미국 조지아주에 설립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하이브리드 생산을 추진 중이다. 전기차 의존도를 낮추고 수요가 꾸준한 하이브리드를 통해 수익성을 방어하겠다는 구상이다.
제품 전략도 조정되고 있다. 현대차는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라인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를 전동화의 또 다른 축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하이브리드 모델 수를 기존 14종에서 18종으로 늘리고, 2026년 말부터는 소형 엔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EREV 라인업을 구축할 방침이다. 충전 인프라 부담을 줄이면서도 전동화 효과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전기차 전략의 후퇴가 아니라, 탄소중립으로 가는 ‘현실적 경로 수정’으로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는 “각국 정부가 목표는 유지하되 속도를 조절하면서 하이브리드가 다시 과도기적 해법으로 부상했다”며 “현대차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병행하는 유연한 전략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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