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진흥 앞에서 길 잃은 문체부
||2025.12.22
||2025.12.22
AI 산업 진흥이 국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 역할이 흔들리고 있다. AI 학습 데이터의 핵심 쟁점인 저작권을 두고 문체부가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작권 보호라는 헌법상 재산권과 AI 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정부 내 주도권은 문체부를 벗어나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와 산업 부처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정부, AI 드라이브 가속
21일 관련 업계에 의하면 정부·여당은 AI 산업 진흥에 집중하고 있다. 앞서 12월 15일 열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출범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는 AI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AI 액션플랜)’ 세부과제가 공개됐다. 하지만 AI 학습 데이터 문제의 핵심인 저작권 이야기는 데이터분과장이 관련 법 개정과 정책 수단을 마련하겠다는 정도에 그쳤다. AI 발전에 핵심적인 데이터 학습 문제는 제도 개선 필요성 언급에 그쳤다
백은옥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데이터분과장은 “학습 과정에서 어떤 저작물을 학습 사용 가능 여부에 관한 법적 불확실성이 있으면 기술 개발하는 쪽에서는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한편으로는 저작권자가 자신의 창작물이 학습에 활용되도록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에도 걸림돌이 있어 AI기업·창작자 양자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법 개정과 정책 수단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12월 16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저작권 분쟁 위험 자체가 중소기업·스타트업이 AI에 도전하는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AI 경쟁에서 배제된다면 대한민국 AI 생태계는 소수 대기업 중심으로 고착되어 혁신은 멈추고 국가 경쟁력이 추락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저작권 해법 못 낸 문체부
이를 두고 업계 및 전문가들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그동안 주도해 온 저작권 관련 정책 의제가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쪽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창작자 보호와 AI 산업 진흥 어느 쪽에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제도 개선의 병목 지점 같은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그동안 발표한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2023년 12월), 생성형 AI 저작물 학습 관련 공정이용 안내서(2025년 12월) 등의 가이드라인은 실제 산업 현장에 반영되지 못했다.
반면 부총리급으로 격상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부 측에서는 AI 학습 데이터 관련 제도 마련을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체육관광부가 위원장이 대통령인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부의 발목을 잡는 것 같은 형국이 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실제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작권 보호에 방점을 찍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더라도 다른 부처·산업계와 충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 및 전문가들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작권법 개정과 저작물 공정이용 관련 제도 재편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왔다고 봤다.
공정이용은 저작물을 공익 목적으로 쓸 때 책임을 면제해주는 일종의 면책권이다. 누군가 공격했을 때 방어하는 것이 ‘정당방위’인 것처럼 저작권 침해로 소송이 제기됐을 때 AI업계가 정당방위처럼 면책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여당이 도입하려는 것도 이 공정이용 면책제도다.
창작자·산업계 모두 불신
정작 실제로 만난 여러 창작자는 공정이용 제도에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자신들이 혹은 콘텐츠 업계가 AI 시대 대한민국 기술 발전을 발목 잡는다는 낙인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창작자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저작물 학습을 허락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 수고가 투입된 창작물을 AI가 학습하면서 대가를 받지 못하면 창작을 계속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AI의 저작물 학습 자체를 전면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현재 창작 생태계가 겪는 위기 상황은 콘텐츠 업계에서 자주 비유되는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구조다. 공유지의 비극은 초원에 소 떼를 풀어놓고 관리하지 않으면 소들이 풀을 다 먹고 결국 황무지가 되어 더 이상 동식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말한다. AI 고도화를 위해 다양한 콘텐츠 저작물을 학습하는 게 소가 풀을 먹는 상황과 같다. 새로운 저작물이 꾸준히 탄생해야 AI가 학습할 새로운 데이터가 생산되는데 그 창작 생태계가 저작권 침해로 인해 망가진다면 AI가 학습할 것이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부·중소벤처기업부 등 AI 산업 진흥을 추진하는 부처에서는 저작권 관련 기금을 조성하고 AI 기업으로부터 수익 일정 부분을 징수하는 것 등을 통해 저작권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방안이 현실화되려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창작자 단체들과 협의해 저작물 이용방안이나 대가 산정 기준 같은 것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막힌다는 게 문제다.
장관 인사 논란까지 번진 불신
창작자들도 문화체육관광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플랫폼 기업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창작 생태계를 이용해 돈을 벌던 플랫폼 출신 인사가 플랫폼과 AI 업계 편을 들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산업계의 편을 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12월 17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생성형 AI 저작물 학습 등 공정이용 안내서가 국내 AI·벤처 스타트업 생태계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한국엔젤투자협회, 한국인공지능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벤처·스타트업·투자업계 협단체의 모임이다.
한 콘텐츠 저작권 관련 전문가는 “그동안 쌓인 게 많은 AI 산업 진흥 담당 부처들이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의 공공의 적처럼 여기는 것 같다”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10년쯤 동안 공정이용을 비롯한 저작권 관련 제도 개편에 실패하면서 저작권 의제가 문화체육관광부 손을 떠나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 여당 등에서 직접 컨트롤하려고 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법리를 만들어 공정이용을 폭넓게 인정한다는 미국에서는 정작 AI 학습과 저작물 공정이용 관련 소송이 60건쯤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가 공정이용이라고 하는 걸 법원이 아니라고 뒤집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만약 정부가 밀어붙인다면 삼권분립 원칙과 어긋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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