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자율주행 못하고 헤매는 세 가지 이유… 일각선 ‘정의선 책임론’도
||2025.12.15
||2025.12.15
이 기사는 2025년 12월 12일 10시 30분 조선비즈 CSR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서 저희(현대차그룹)가 좀 늦은 편입니다. 중국 업체나 테슬라가 잘하고 있기 때문에 격차는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 5일 경기 용인의 기아 비전스퀘어에서 열린 ‘기아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틀 전인 3일 현대차·기아의 자율주행 사업을 주도해 온 송창현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사장) 겸 포티투닷 대표가 저조한 성과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뒤 정 회장마저 기술 개발이 뒤처지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미래 자동차 패권의 핵심인 자율주행 기술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 등이 이미 완전한 형태의 자율주행 차량을 상용화하고 있는 반면 현대차·기아는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송 전 사장의 사임으로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적임자를 찾아 기술 개발의 방향부터 다시 잡아야 할 상황이 됐다.
테슬라의 경우 2020년부터 미국에서 완전자율주행 기술인 FSD(Full Self-Driving)를 상용화했으며, 지난달 23일부터 국내 시장에서도 이 기능이 적용된 모델S와 모델X를 판매하고 있다. 옵션 가격 904만3000원을 내면 FSD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외부에서 영입한 모빌리티 비(非)전문가에게 전권을 주는 과감한 도전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뚜렷한 성과 없이 시간만 허비한 셈이라고 지적한다. 또 수 년 간 투자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성과를 검증하지 않았다는 점과 연구개발 조직의 교통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도 실책으로 거론된다.
ⓛ 모빌리티 非전문가에 전권… “회장이 영입해 견제 불가”
송창현 전 사장이 대표직을 겸직했던 포티투닷은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개발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송 전 사장은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을 거쳤다. 네이버에서 음성인식, 기계번역(파파고),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등 차세대 기술 개발을 주도하다 2019년 포티투닷을 창업했다.
당시 포티투닷은 도심형 모빌리티 서비스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차세대 모빌리티 통합 플랫폼 ‘유모스(UMOS)’ 개발에 착수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 회장은 송 전 사장이 모빌리티 전문가는 아니지만, 양쪽이 힘을 모을 경우 모빌리티 주도권을 잡는 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봤다. 그가 2019년 4월 포티투닷 투자를 위해 송 전 사장을 만나 “코드42(포티투닷의 첫 사명)의 통찰력, 서비스 플랫폼 운영 경험은 현대차가 추진하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라고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후 정 회장은 송 전 사장에게 단계적으로 자율주행 기술 개발의 전권을 쥐어줬다. 정 회장은 2022년 8월 포티투닷을 인수하기 전부터 현대차·기아 모빌리티 기능을 총괄하는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본부를 신설하고, 송 전 사장을 본부장에 임명했다. 외부 인사가 현대차그룹 사장 직함을 부여받은 첫 사례다.
포티투닷이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후에도 송 전 사장은 포티투닷 대표와 현대차그룹 첨단플랫폼(AVP) 본부장을 함께 맡았다. 현대차그룹의 기술을 개발해주는 ‘하청’이면서 이를 지시하는 ‘원청’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한 것이다.
이후 송 전 사장이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대해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았다. 현대차는 지난해 8월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인 웨이모와 손잡고 파운드리(위탁 생산) 사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웨이모가 담당하고, 현대차는 이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자체 소프트웨어 브랜드인 ‘플레오스’를 공개하고, 2027년까지 자율주행에 필요한 AI까지 독자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자율주행 기술의 방향성이 외부와의 협업을 통한 하드웨어 중심인지, 독자적인 소프트웨어가 주가 되는지 내부에서도 혼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송 전 사장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업계와 그룹 내부에서는 자율주행 연구개발의 방향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었다”며 “하지만 그가 정 회장이 직접 영입한 사장이다 보니 쓴소리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고 말했다.
② 검증 없는 낙관론에 의미 없는 투자 지속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는 자율주행기술 개발 과정에서 성과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포티투닷은 현대차그룹에 인수될 때부터 가시적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과 비전만으로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포티투닷을 품에 안은 직후인 2022년 9월 “자율주행의 기술 격차를 1년 수준으로 좁혔다. 테슬라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기술에서 앞서고 있으나, 추격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장웅준 당시 현대차 자율주행사업부장)라고 했다.
이러한 낙관론 속에 포티투닷은 눈에 띄는 결과물 없이도 버틸 수 있었다. 송 전 사장은 현대차그룹에 포티투닷이 인수되기 전부터 유모스를 2021년 출시할 예정이라고 공언했다. 유모스를 통해 자율주행 차량과 배달 로봇, 드론, 전동 킥보드 등을 활용한 차량 호출 및 공유, 음식 배달, 이동형 상점과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유모스는 결국 상용화에 실패했다.
실패 사례는 더 있다. 포티투닷은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 기반의 탑재형 자율주행 모듈 ‘AKit’, 자율주행차 호출·탑승 플랫폼 ‘TAP!’, 운송업무 관리도구 ‘카포라’ 등을 줄줄이 내놨다. AKit 역시 상용화 단계까지 가지 못했고, TAP!은 지난해 운영을 중단했다.
특히 TAP!은 서울 청계천, 청와대, 상암동, 여의도 등 주행 경로가 단조로운 일부 지역에서만 운영됐는데, 서비스가 운영된 약 2년 4개월간 누적 주행 거리가 17만1718km에 불과하다.
TAP!은 사실상 직진 자율주행만 가능했고, 이마저도 운전자가 대부분 개입했다. 여기에 중국산 자율주행 모듈을 장착해 자체 기술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반면 다른 기업들은 이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쌓아 일찌감치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 테슬라는 FSD의 누적 주행 거리가 올해 10월 기준으로 60억마일(약 96억km)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또 내년 말에는 112억마일(약 180억km)에 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웨이모는 운전자 없는 완전 자율주행 차량의 누적 주행 거리가 올해 7월 1억마일(약 1억6000만km)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불과 4개월 전인 지난 8월에도 5003억원을 포티투닷에 추가 투자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자문위원은 “(정 회장) 본인은 물론 임원진 모두 자율주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검증 없이 전적으로 맡겨뒀다가 이 상황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③ 중구난방 연구개발이 부른 ‘비효율’
포티투닷과 모셔널, 기존 그룹 내 자율주행 연구개발 조직 간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점도 현대차그룹의 기술력 확보를 늦춘 요인으로 꼽힌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은 원래 모셔널이 전담했다. 현대차그룹이 2020년 미국 자율주행 기술 기업 앱티브와 만든 합작법인으로,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경영권을 완전히 확보한 곳이다. 차량 전체를 고성능 컴퓨터로 만드는 SDV 연구개발에 중점을 두던 포티투닷이 자율주행에 집중하면서 모셔널의 입지가 축소되기 시작했다.
연구개발 동력이 흩어지면서 방향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포티투닷이 개발한 자율주행 인공지능(AI) 아트리아는 카메라 8개와 레이더 1개로 도로 상황을 인식하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 방식으로 작동한다. 수만가지 규칙을 사람이 일일이 설계하는 ‘규칙 기반’ 방식과 달리 AI가 데이터를 수집 단계부터 판단까지 통째로 학습해 사람처럼 직관적으로 운전하는 것이다.
반면 모셔널은 차량에 레이더와 라이다((LiDAR) 등 센서를 부착하고 미리 차량에 입력한 지역 지도를 기반으로 운행하는 ‘모듈’ 방식을 개발하다 최근에서야 포티투닷과 같은 엔드 투 엔드 방식으로 선회했다.
이러한 구조는 투자 비효율과 연구개발 중복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현대차그룹이 포티투닷과 모셔널에 쏟아부은 돈도 각각 2조원, 5조원이 넘는다.
최태용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차의 가치 저평가의 가장 큰 원인은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AI 소프트웨어(SW) 역량의 부재”라며 “그룹 내 AI SW 개발 역량이 현대모비스, 현대오토에버, 포티투닷,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으로 분산된 점이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 내부선 정의선 책임론 불거져
사정이 이렇데 보니 현대차 내부에서는 정 회장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회장은 송 전 사장을 발굴하고, 그에게 전권을 몰아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난립한 연구개발 주체들 사이에서 잡음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이 구조를 밀어부쳤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꼈다는 현대차 연구원들이 상당하다는 게 내부 직원의 전언이다.
초기부터 송 전 사장의 지분을 대거 사준 것이 패착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정 회장은 송 전 사장이 포티투닷을 창업하기 전부터 그를 현대차그룹으로 영입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일단 포티투닷의 지분을 확보하는 식으로 접근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송 전 사장이)거액을 먼저 받은 입장에서 성과를 향한 절실함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조만간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있다. 송 전 사장의 빈자리를 누구로 채울 것인지 결정하기에 앞서 자율주행 기술의 방향성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인해 정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항구 전문위원은 “자율주행 기술 방향에 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 보니 굉장히 신중한 상황”이라며 “인사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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