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운전자는 어떡하라고… 영문 병기 없는 ‘나홀로 한글 표지판’
||2025.11.05
||2025.11.05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2025년 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주민은 25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는 총인구의 5%에 달하는 수치다.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 관광객, 이민자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도로 위를 달리는 명실상부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도로는 아직 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나 공항을 가리키는 녹색 방향 표지판에는 영문이 잘 병기되어 있지만, 정작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수많은 주의·경고·규제 표지판은 ‘나홀로 한글’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코리아’를 외치지만, 도로 위에서는 여전히 언어의 장벽이 외국인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안전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외국인 운전자들이 가장 큰 혼란을 겪는 것은 바로 안전과 직결된 표지판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린이 보호구역’이다. 아이들이 뛰노는 그림(픽토그램)이 있다 해도, ‘어린이 보호구역, 천천히’라고 쓰인 한글 문구의 의미를 모르는 외국인 운전자는 왜 갑자기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공사중, 우회하시오’ 표지판 역시 마찬가지다. 삽질하는 사람 모양의 픽토그램만으로는 전방 도로가 폐쇄되었는지, 차선이 줄어드는지, 정확히 어디로 우회해야 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 한글을 모르는 운전자는 갈림길 앞에서 당황하며 급정거하거나 무리한 차선 변경을 시도하다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심각한 문제는 일시정지나 양보 같은 규제 표지판이다. 물론 ‘정지’ 표지판의 팔각형 모양은 국제 표준이지만, 역삼각형 모양의 ‘양보’ 표지판이나 ‘우선도로’, ‘주정차 금지’ 등 수많은 한글 표지판의 의미를 모른 채 운전하는 것은 사실상 눈을 감고 도로에 나서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해당 외국인 운전자뿐만 아니라, 도로 위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현행 ‘도로표지규칙’의 한계 때문이다. 현재 규정상 도시나 도로명을 안내하는 ‘도로표지’는 한글과 영문을 함께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주의·경고·규제 등을 나타내는 ‘안전표지’에 대해서는 영문 병기 의무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그림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픽토그램 외에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도 대부분 한글로만 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국제 표준 픽토그램의 활용을 확대하는 것은 중요한 해결책이다. 그림 문자만으로도 위험 상황이나 규제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개선하고 보급해야 한다.
하지만 픽토그램만으로는 모든 정보를 전달하기 어렵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전과 직결된 최소한의 필수 표지판에라도 영문 병기를 의무화하는 제도 개선이다. ‘School Zone(어린이 보호구역)’, ‘Construction Zone(공사중)’, ‘Stop(일시정지)’, ‘Yield(양보)’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간단한 영문 문구를 한글과 함께 표기하는 것만으로도 외국인 운전자의 교통 이해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도로 위 안전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가치다. 250만 외국인과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한글로만 된 교통표지판은 더 이상 내국인의 편의가 아닌 모두의 위험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전국의 교통표지판 실태를 전수 조사하고, 외국인 운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 표준에 맞는 픽토그램을 확대하고, 핵심적인 안전 표지판에 영문 병기를 추가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는 단순히 외국인을 위한 배려의 차원을 넘어, 도로 위 모든 구성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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