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레인지로버 홀릭에 빠지다… 레인지로버 P550e 시승기
||2025.11.03
||2025.11.03
수많은 자동차가 새롭게 출시되고 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럼에도 각 세그먼트를 대표하는 모델들은 존재한다. 소형 해치백에서는 폭스바겐 골프, 플래그십 세단 중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가 대표적이다.
레인지로버 역시 그런 모델이다. 벤틀리 벤테이가나 롤스로이스 컬리넌 같은 상위급 SUV가 등장했지만, 레인지로버는 여전히 ‘사막 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며 플래그십 SUV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그 레인지로버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버전인 P550e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부산 사상구까지 왕복하며 효율성과 주행 감각, 그리고 레인지로버 특유의 품격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 P400 엔진에 160kWh 전기 모터 결합… 전기차 맞먹는 대용량 배터리
레인지로버 P550e의 엔진룸에는 직렬 6기통 3.0ℓ 가솔린 엔진이 담겨있다. 디펜더와 벨라를 비롯한 모델에서 P400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제니움 엔진이다. P550e는 여기에 160kW(약 215마력)의 고성능 전기 모터가 결합된다. 높은 출력의 전기 모터가 들어간 만큼 배터리의 용량도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보다 큰 38.2kWh다. 레이 EV에 들어가는 배터리 용량이 35.2kWh이니 시티카 용도의 전기차보다 더 큰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후반부에 충전 경험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겠지만, 이 대용량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JLR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임에도 급속 충전 시스템을 도입했다. 변속기는 ZF의 8단 자동 변속기를 사용해 매끈한 변속감을 선사한다.
파워트레인 활용에 따른 드라이브 모드는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세이브 모드는 배터리 사용을 최소화하며 내연기관 중심으로 구동되는 모드다. 배터리를 100% 충전했을 때 기준으로 배터리 잔량이 8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설정됐으며, SOC가 80%에 다다르면 거의 모든 순간에 내연기관만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차중량이 3톤이 넘어가는 무거운 차지만 6기통 3.0ℓ 가솔린 엔진도 결코 힘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EV모드는 온전히 전기 모터로만 구동할 수 있게 설정하는 모드다. 레인지로버 P550e의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거리는 국내 인증 기준 80km이며, 100% 충전했을 때 계기판에 뜬 주행 가능거리는 81km였다. 세이브 모드와 마찬가지로 EV모드 시에 내연기관에 간섭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가속 페달을 100% 전개했을 때는 엔진이 깨어나며 출력을 보탰지만, 그 외의 환경에서 엔진은 깨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고속도로 제한 속도를 넘나드는 추월 가속에서도 엔진은 개입하지 않았다. 160kW라는 전기 모터의 성능만으로도 3톤이 넘는 레인지로버를 거뜬히 몰 수 있었다.
다만, 주행 중 충전을 위해 회생제동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없었다. 회생제동 강도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를 주행하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타력주행을 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였다. 이는 플래그십 SUV라는 레인지로버의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회생제동이 적극적으로 작동하면 차량은 그만큼 감속하게 되고, 탑승자는 그때마다 앞뒤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승차감을 위해 회생제동 강도를 약하게 설정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브레이크를 밟을 때 더욱 확실해졌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 계기판은 회생제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그래프를 통해 보여줬다.
하이브리드 모드는 주행 상황에 맞춰 전기 모터와 내연기관을 균형있게 조절한다. 막히는 서울 시내를 주행할 때는 대부분의 영역을 전기 모터로 주행했지만, 반대로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는 대부분의 영역을 내연기관으로 주행했다. 고속 크루징 상황에서 발을 떼면 얼마 후 엔진이 꺼지며 타력 주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때 가속 페달을 밟으면 순간적으로 전기 모터가 개입하며 부드럽게 가속으로 연결된다. 랜드로버 디펜더, 레인지로버 벨라 등에서 경험했던 P400 엔진은 비교적 터보랙이 심한 파워트레인이었는데, 전기 모터의 초반 개입으로 거친 느낌없이 지속적인 부드러움을 선사했다.
외부 소음에 대한 대책과 파워트레인에서 비롯한 NVH도 적극적으로 막았기에 엔진과 전기 모터의 유기적인 전환이 결코 거칠거나 이질적이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 중 어떤 하나로만 주행할 때에도 결코 출력의 부족함은 느낄 수 없었다. 가속 페달을 100% 전개하면 엔진과 전기 모터가 모두 결합해 550마력의 최고 출력과 81.6kg.m의 최대 토크를 선사하며, 3톤이라는 차체 무게가 무색할 정도로 시원한 가속을 보여준다.
◆ 플래그십 SUV인데 이 연비가 맞나?
다양한 편의 장비와 큰 차체로 플래그십 SUV는 엄청나게 낮은 연비를 보여주곤 한다. 레인지로버 P550e를 시승할 때도 하이브리드 자동차이긴 하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부산에 도착한 후 확인한 연비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고양시에서 출발해 충주휴게소에서 한번 쉬었으며, 이후 부산까지 한번에 주행을 마쳤다. 영상 촬영을 위해 고양시에서 충주휴게소까지는 세이브 모드를 사용해 배터리 사용을 최소화했고, 이후 충주휴게소에서 부산까지는 하이브리드 모드로 주행했다. 제한 속도의 10% 내외로 주행했으며, 운전자 보조 시스템은 구간단속 구간에서만 사용했다.
처음 고양시에서 충주휴게소까지의 주행 거리는 131.8km로 트립 컴퓨터에 표시된 평균 연비는 7.1ℓ/100km였다. 이는 약 14.08km/ℓ다. 이후 충주휴게소에서 부산까지 267.9km 구간에서 트립 컴퓨터는 평균 연비 5.9ℓ/100km를 띄웠다. 익숙한 표기법으로 바꾸면 16.9km/ℓ다. 3톤이 넘는 큰 덩치의 플래그십 SUV로서는 엄청난 연비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고양시에서 부산까지 주행했음에도 주유 게이지는 채 반이 줄어들지 않았다.
고양시에서 출발하기 전 100% 충전했던 배터리는 부산의 마지막 요금소인 대동 요금소를 지날 때 0%에 도달했다. 물론 고양시에서 충주휴게소까지 세이브 모드를 활용했기 때문에 출발할 때부터 하이브리드 모드로 주행했다면 이보다 더 빨리 소진됐을 것이다. 하지만 SOC가 0%가 됐다고 해서 모든 전기 모터가 아예 작동을 중지한 것은 아니었다. 소통량이 극도로 많은 정체구간과 주차 상황에서는 전기 모터로만 주행이 가능했다.
◆ 높은 효율성 보여주지만 충전 경험은 썩 좋지 않아
플래그십 SUV임에도 뛰어난 연비 효율을 보여준 P550e였지만, 충전 경험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청도새마을휴게소 채비 급속 충전소에서는 이 차를 인식하지 못 하고 충전기가 재부팅이 됐다. 해당 기기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옆에 있는 다른 충전기에 연결했지만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재부팅 됐다.
이후 들른 칠곡휴게소 워터 급속 충전소 역시 이 차를 인식하지 못 했고, 그 옆에 있던 SK 일렉링크 충전소에 가서야 충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로서 거의 유일하게 급속 충전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만큼 충전기와 호환성은 떨어지지 않나 의심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또한 급속 충전을 지원하긴 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충전 용량이 최대 50kW에 그쳐 배터리 0%에서 100%까지 충전하는데 1시간이 소요된다. 완속 충전의 경우 높아봐야 11kW 용량으로 충전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빠른 것은 맞지만, 전기차만큼의 충전 효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거리 주행에서는 굳이 충전을 하면서 다니는 것보다 내연기관만으로 주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더군다나 시간이 곧 돈인 레인지로버 차주라면 말이다.
◆ 배를 모는 것과 같은 승차감… 괜히 레인지로버 아니야
레인지로버 P550e에는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되어 있으며, 7.4도까지 조향 가능한 후륜 조향 기능이 담겨있다. 혹자는 레인지로버의 승차감을 놓고 ‘배를 모는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이만큼 알맞게 표현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에어 서스펜션은 거친 노면에서 끊임 없이 부드러운 승차감을 선사하며, 잔진동이 거칠게 이는 콘크리트 노면에서도 진동 없이 편안한 실내 공간을 만들었다. 항상 승차감 테스트를 진행하는 ‘드러운 노면’에서 요란하게 달그락거리던 고프로 거치대가 조용했던 유일한 차량이었다. 고운 노면에서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차는 물 흐르듯이 넘실넘실 거리는 반응을 보여줬다.
하지만 후륜 서스펜션의 ‘떨어지는 충격’은 비교적 크게 다가왔다. 이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담긴 대용량 배터리로 인한 문제로 추측된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큰 충격이지 다른 차량과 비교했을 때에는 여전히 얌전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 차보다 가벼운 일반 내연기관 레인지로버는 얼마나 좋은 승차감을 지니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5m가 넘는 긴 전장을 가지고 있지만 후륜조향 덕에 시내 주행이 편안하다. 차선 3개만으로 충분히 유턴이 가능하며, 이중 주차 차량이 넘쳐나는 주차장에서도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다.
◆ 사소한 단점 있지만 만족감이 매우 큰 차량
3일동안 1000km가 넘게 주행을 하며 ‘레인지로버 홀릭’에 빠질 정도로 이 차량이 매우 맘에 들었다. 물론 단점들도 존재한다. JLR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피비프로는 때에 따라 반응이 매우 느렸으며, 음성 인식을 활용한 내비게이션 경로 안내는 물론 차량 제어도 온전히 지원하지 않았다. 한글화된 센터 디스플레이와 달리 2열 인포테인먼트는 한글화가 안 됐다는 것도 완성도 부분에서 아쉽다.
무엇보다 제일 아쉬운 것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스탠다드 휠 베이스 모델인 SWB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플래그십 SUV인만큼 LWB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많을텐데 SWB에만 P550e가 있다는 것은 아쉽다. 휠베이스가 짧다고 해서 2열 편의장비가 부족한 것은 아니자만 휠베이스의 길이는 메르세데스-벤츠 GLE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짧다.
하지만 레인지로버라는 이름에 걸맞는 편의장비와 승차감, 오프로드 기능들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높은 출력과 연료 효율은 서로 상생할 수 없는 것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모습이었다. 뛰어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완성도는 내년 출시 예정인 100% 전동화 레인지로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게 만든다. 예상컨데, 그 모델은 더더욱 우리를 놀라게 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고객님만을 위한 맞춤 차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