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 동일하면 특정 약 상관없이 처방 가능해지나
||2025.10.19
||2025.10.19
의사가 특정 제약사의 제품명이 아닌 성분명만으로 약을 처방하는 ‘성분명 처방’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약사단체는 환자의 선택권 확대와 약가 절감이라는 공공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의료계는 환자 안전과 진료권 침해를 이유로 대치하고 있어 환자에게 실질적인 이익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집중된다.
의약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타이레놀’과 같은 상품명을 처방하면, 약사는 해당 회사 제품을 그대로 조제하는 방식이다.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의사는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성분명만을 처방전에 적고, 약사는 동일 성분의 제네릭(복제약) 중 환자가 선택하거나 약사가 추천하는 제품을 조제할 수 있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의약품마다 고유 성분명을 부여하고 있으며, 영국·캐나다·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성분명 처방이 이미 보편화돼 있다. 일본도 정부 주도로 제네릭 신뢰도를 높여 사용 비중을 80% 이상 끌어올렸다.
약사사회는 성분명 처방이 단순히 조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보건의료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전환점이라고 주장한다. 동일 성분을 기반으로 처방·조제가 이뤄지면 ▲의약품 수급 불안 상황에서 원활한 대체조제 ▲환자의 성분 인지로 의료진과의 소통 강화 ▲중복·과량 복용 방지 ▲약가 경쟁 촉진 ▲환자의 선택권 보장 등 다방면의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특히 제네릭 의약품은 오리지널과 동일한 성분·제형으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통과한 제품이다. 국내에서는 동일 성분임에도 오리지널 대비 가격이 최대 5배까지 차이 난다. 예컨대 치매 치료제 도네페질의 경우 최저가 544원, 최고가 2460원으로 환자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성분명 처방으로 환자가 저가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 지출까지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의약품정책연구소는 성분명 처방 도입 시 약품비와 리베이트 등 사회적 비용을 합쳐 연간 최대 9조4000억원 절감이 가능하다고 추정했다. 한 약사계 관계자는 “성분명 처방을 통해 최대 7조9000억원의 약품비 절감과 함께 불필요한 처방·리베이트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약사단체는 지난 9월 국회에서 ‘국민의 조제약 선택권 확대를 위한 성분명 처방 한국형 모델 도입 정책 토론회’를 열고 구체적 운영안을 제시했다. 한국형 모델은 제품명을 병기하지 않고 ‘주성분 코드+성분명+제형+함량’만을 기재해 처방하는 방식을 골자로 한다.
처방→전산시스템 후보 약 자동선정→환자에 약 리스트 제공 및 설명→환자 선택 후 조제→성분명·제품명 병기된 복약지도서 제공→앱을 통한 내역 공유라는 단계로 진행된다. 정부도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을 활용한 간소화된 대체조제 방식을 마련하는 등 제도화 논의를 본격화했다.
또한 국회에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에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타이레놀’ 품절 사태와 백신·해열제 수급난이 반복되면서, 공급 불안 상황에서 대체조제·성분명 처방의 필요성이 부각된 점이 배경이다.
반면 의료계는 성분명 처방이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고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분명 처방 도입 시 장외투쟁까지 포함한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의료계는 “성분이 같더라도 부형제나 제형, 제조공정 차이로 인해 실제 환자에게 효과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정 제약사 제품을 처방하는 것은 환자의 치료 반응과 신뢰성을 고려한 전문적 판단이며, 이를 약국 단계에서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진료행위 침해’라는 입장이다.
또한 환자들이 의약품 성분명에 익숙하지 않고, 제조사 신뢰도·안전성 정보를 알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로 많은 환자가 ‘성분명’보다는 ‘브랜드명’을 기억해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약이 바뀔 경우 혼란이나 복약 순응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최저가 의약품을 우선 조제하도록 강제하고, 선택하지 않을 경우 비용 차이를 명확히 두는 등 실효성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단체들은 성분명 처방이 환자에게 실질적 혜택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최저가 조제 의무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논의되는 모델은 약사에게 대체조제 권한을 부여하지만, 저가 제품 선택을 강제하지 않아 실제 소비자 편익이 담보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분명 처방은 환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의료비 절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설계·운영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사단체의 강경한 반발과 환자 혼란 가능성, 가격·품질 정보의 비대칭성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라며 “의료계와 약계, 정부, 소비자가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가 제도 성공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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