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꼭 알아야 할 아름다운 우리말 사전 [새책]
||2025.10.11
||2025.10.11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아름다운 우리말 사전
고정욱 지음 | 자유로운 상상 출판사 | 372쪽 | 2만5700원
“왕배야덕배야.”
여기저기서 시달림을 받아 괴로움에 견딜 수 없을 때 내지르던 우리말이다. 지금 이 말을 듣고 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몽니’, ‘들온말’, ‘손 맑다’ 같은 표현 역시 점점 낯설어지고, 일본어 잔재나 외래어, 줄임말이 우리말 자리를 밀어내고 있다. 언어는 사고의 기반이고, 잊히는 단어는 곧 사라지는 생각이다. 광복 80주년과 한글 창제 579돌을 맞은 올해, 세종대왕이 들으셨다면 깜짝 놀랄 변화의 속도다. 누군가는 “AI가 다 해준다”고 말하지만 사라져가는 말을 복원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이다. 문학박사 고정욱 작가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아름다운 우리말 사전’을 내놨다.
이 책은 옛 우리말을 집대성한 학술서라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살아 있는 낱말집에 가깝다. 곤충, 과일, 냄새, 심리 상태, 사람, 놀이 등 404개의 단어를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분류해 실었다. 비슷한 단어라도 쓰임과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도 흥미롭다. ‘손 뜨다’는 파는 물건이 잘 팔려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고, ‘손 맑다’는 재수가 없어 생기는 것이 없다는 뜻이며, ‘손 까불다’는 재산을 날리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단어의 본래 뜻을 풀어내는 해설에 예문까지 곁들여 단순한 사전이 아니라 읽는 재미를 살렸다.
책의 뒷부분에는 우리 문학 속에서 살아 있는 단어들을 되살리는 부록이 실려 있다. 김주영, 이문구, 천승세, 김원일, 홍명희 등 대표 작가들의 작품 속 우리말을 발췌해 정리했다. 북한 문학 속 순우리말도 함께 담았다. ‘빵꾸’, ‘노가다’, ‘스키다시’ 등 무심코 쓰고 있는 일본어 잔재와 그 대체어를 병기해 바른 말을 되새기게 한다. 익숙하다고 해서 모두 우리말은 아니다. 낯설다고 해서 잊혀져야 할 말도 아니다. 단어 하나가 언어의 뿌리이고, 언어는 곧 문화의 뿌리다.
작가는 서문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한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다.” 순우리말이 사라질수록 우리의 세계도 좁아진다는 메시지다. 우리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시도가 드물었던 현실에서 그는 오랜 시간 단어를 찾고 분류하고 기록했다. 그의 바람은 거창하지 않다. 사전은 책장에 꽂아두는 책이 아니라 손 가까이 두고 수시로 펼쳐 쓰는 책이어야 한다는 것, 언어는 그렇게 삶 속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숨을 쉰다는 믿음이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아름다운 우리말 사전’은 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우리말을 보존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책이다. 세대와 세대가 소통하고 문화의 뿌리를 지켜내는 일은 결국 단어 하나에서 시작된다.
이윤정 기자
it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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