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치료환경 위해 HIV 오해·편견 개선 절실”
||2025.09.10
||2025.09.10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인식 변화가 뒷받침돼야 환자들이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사회적 비용 절감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 나왔다.
레드(RED) 마침표 협의체와 대한에이즈학회는 10일 ‘HIV 차별 종식을 위한 레드 마침표 캠페인’의 출범을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레드 마침표 협의체는 의료계, 환자단체, 학계, 산업계가 참여해 출범한 장기 프로젝트다. 이름은 에이즈를 상징하는 붉은 리본에서 따왔으며 ‘편견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단순히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다방면의 인식 개선 활동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간담회에는 각계 전문가들이 연사와 패널로 참여해 HIV 치료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적 낙인과 편견의 실태를 지적하며 인식 개선과 정책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HIV는 더 이상 과거의 치명적 질환이 아니다. 항레트로바이러스제(ART)의 발전으로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만 이뤄진다면 비감염인과 동일한 수명을 누릴 수 있고, 치료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정도로 억제되면 전파 위험성조차 사라진다.
HIV가 혈액검사상 검출되지 않을 정도로 억제되면 성접촉으로도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는다. 이를 ‘전파 불가(U=U)’라고 불리며, 약 복용을 통해 HIV 감염인은 임신·출산에 있어서도 비감염인과 똑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감염인의 삶을 옥죄고 있다.
첫 발표자로 나선 손문수 KNP+ 대표는 “20년 전 공포의 시각에 머물러 있다”며 “감염인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내재적 낙인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손실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HIV는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그는 항레트로바이러스제 치료법이 HIV 감염인을 ‘정상적인 수명’으로 이끌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실제 선진국에서는 HIV 감염인의 평균 수명이 비감염인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진 교수는 “국내에서는 여전히 HIV 감염인의 자살 위험이 비감염인보다 1.84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덧붙였다. 이는 과학적 사실이 사회적 낙인에 가려져 감염인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의료계, 인권단체, 산업계가 한 목소리로 ‘문제는 약이 아니라 인식’이라고 주장했다. HIV 감염인을 향한 차별과 낙인이 치료 의지를 꺾고 심리적·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며 나아가 국가적 손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2025년 HIV 관련 국민 인식 조사’ 결과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전국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HIV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HIV와 AIDS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13%만이 “한국 사회가 HIV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답했으며, 10명 중 8명은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81%는 “정부가 HIV 감염 감소를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선희 대한에이즈학회 회장은 “국민 인식 조사가 보여주듯 여전히 대중 이해도는 낮지만,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분명하다”며 “이 지점을 발판으로 삼아 정부와 사회가 함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환 신나는센터 상임이사는 “설문조사를 통해 비록 질환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만 차별 해소와 정책적 지원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을 확인했다”며 “이제 중요한 것은 사회 전반의 연대와 지지를 실질적 행동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 순서로 열린 패널 토론에서 좌장을 맡은 김태형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교수는 “HIV를 둘러싼 문제는 이제 의료진만의 몫이 아니다”며 “언론, 교육, 정부 정책, 시민사회의 연대가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30년까지 신규 감염인을 50% 줄이겠다는 국가적 목표가 선언적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사회적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레드 마침표 협의체는 앞으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단발성 홍보가 아닌, 일상 속에서 HIV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긍정적 메시지를 확산시켜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것이 핵심 목표다.
전문가들은 HIV 편견과 차별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감염인의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가 이뤄진다면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고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견으로 인해 진단과 치료 시점이 늦어지면 감염인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난다.
마지막으로 김태형 대한에이즈학회 기획이사는 “레드 마침표 캠페인은 더 이상 HIV 감염인을 사회적 배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누구나 차별 없이 치료와 예방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이라며 “2030년까지 신규 감염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도 이러한 변화 위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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