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호 100대 사건]〈66〉한·미 FTA 통과
||2025.08.07
||2025.08.07

2011년 11월 22일, 국회는 전례 없는 긴장 속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강행 처리했다. 회의장 안에선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리며 저항했고, 회의장 밖에서는 물대포가 등장할 만큼 격렬한 반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한나라당은 본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재석 170명 중 찬성 151표로 법안을 처리했다. 이로써 2007년 타결된 협상이 4년 5개월 만에 비준을 완료하게 됐다.
한·미 FTA 발효는 2012년 3월 15일 0시부터 적용됐다. 한국은 미국산 수입품 9061개 품목에 대해 관세를 철폐했고, 미국도 한국산 8628개 품목 관세를 없앴다. 한국의 대미 수출 품목 중 자동차 부품, 섬유, 전기·전자 산업은 가격 경쟁력 향상이 기대됐고, 중소 제조업계 수혜도 점쳐졌다.
반면 농업, 축산업, 문화 콘텐츠 산업은 외국 자본과 상품 유입에 따른 피해 우려가 제기됐다. 영화 스크린쿼터 축소, 방송시장 개방, 지식재산권 보호기간 연장 등이 대표적 쟁점이었다.
한국은 당시 비준으로 미국, 유럽연합(EU)과 동시에 FTA를 발효한 최초의 아시아 국가라는 의미를 남겼다. 다자간 무역 협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감시도 높아지는 계기가 된 한편, 비준 과정에서 나타난 절차적 정당성 부족, 정보 비공개, 여야 간 극한 대립 등은 국내 통상정책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
정다은 기자 dand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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