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논란’ 구글 지도 반출 결론은?…디지털 주권 기로에
||2025.07.18
||2025.07.18
[디지털투데이 이호정 기자] 구글이 또다시 한국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가져가겠다고 신청했다. 2007년 첫 신청 이후 18년 간 반복되는 논란인데, 트럼프 정부의 관세 압박과 겹치면서 이번에는 특히 더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오는 8월 11일 한국 정부의 결정을 앞두고 찬반 논란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왜 지금인가
구글이 요구하는 것은 '1:5000 축척' 고정밀 지도다. 지도상 1cm가 실제 50m에 해당하는 정밀도로, 골목길과 건물까지 상세히 표현할 수 있다. 현재 구글이 사용하는 1:25000 지도보다 5배 정밀한 데이터다.
한국 정부는 1966년부터 지도 구축을 시작했으며, 1991년부터 약 25년간 1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투입해 이 정밀지도를 완성했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국내 기업들은 이 데이터를 국내 서버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구글은 이 데이터를 해외 서버로 가져가겠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국방부, 국가정보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함께 오는 8월 11일까지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애플도 지난 6월에 비슷한 신청을 냈지만, 애플은 구글과 달리 국내 서버를 보유하고 있어 조건이 다르다.
구글이 올해 2월 18일 신청한 시점도 주목받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의 지도 반출 제한을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며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7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8월 1일부터 한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디지털 규제 이슈가 관세 협상의 "중요한 분야"라고 인정했다.
과거 2011년, 2016년 신청은 주로 안보 논리에 막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 통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단순한 기업 간 거래 문제가 아니라 양국 정부 간 외교 이슈로 번진 것이다.
◆구글의 진짜 의도 vs 반대 논리
표면적으로는 '길 찾기 서비스 개선'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구글의 진짜 목적이 따로 있다고 본다.
가장 큰 목표는 자율주행 시장 진출이다. 구글은 자회사 웨이모를 통해 미국과 일본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상용화했다. 고정밀 지도가 있으면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자율주행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또한 고정밀 지도는 자율주행, 디지털트윈, 증강현실(AR), 스마트시티 등 모든 미래 산업의 기반이 된다. 글로벌 디지털 트윈 시장만 해도 2023년 167억달러에서 2030년까지 연평균 35.7% 성장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플랫폼 독점력 강화가 핵심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고정밀 지도까지 확보하면 모바일 생태계 전반을 장악할 수 있다.
김원대 한국측량학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이 축척 1대 5000 지도가 없어서 구글 지도에 길 찾기 기능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데 오해다"라며 "축척 1대 25000 지도로도 부가 정보를 결합하면 충분히 길 찾기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을까. 먼저 안보 우려가 가장 크다. 구글은 보안 시설 처리를 약속했지만, 이를 위해 해당 시설들의 정확한 좌표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서버 없이 이 좌표가 해외로 나가면 오히려 보안 시설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국방부가 구글 어스의 주요 안보시설 노출 문제로 저해상도 처리를 요청했지만 3년째 답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구글 어스에는 여전히 군사분계선 부근 GP 초소나 서울 한남동 관저 등이 노출돼 있다.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도 크다. 국내 공간정보업체의 99%가 중소기업인 상황에서 구글이 시장을 독점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2008년 구글이 모바일 지도 서비스를 출시했을 때 미국과 유럽의 내비게이션 업체들 주가가 70~85% 폭락했다.
세금 문제도 논란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구글코리아가 지난해 낸 법인세는 172억원이다. 네이버(3842억원)나 카카오(1571억원)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디지털 주권 그리고 한국의 선택
디지털 주권은 자국의 디지털 영토에서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물리적 영토 주권처럼 디지털 공간에서도 외국 기업이나 정부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상우 연세대 교수는 지난 5월 한 국회 세미나에서 "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길찾기 도구가 아니라 AI 시대 디지털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기반"이라며 "정보 주권을 지키는 일이 곧 국가 미래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18년 미국이 제정한 '클라우드 액트(CLOUD ACT)'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구글 등 자국 기업이 해외에서 보유한 데이터에 대해서도 접근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의 고정밀 지도가 구글 서버로 넘어가면 사실상 미국 정부 관할권 아래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찬성 측은 주로 경제적 실익을 강조한다. 외국인 관광객 편의성 향상으로 관광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상업용 위성 서비스 확산으로 이미 고해상도 한반도 위성 이미지가 유통되고 있어 기존 안보 논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런 찬성 논리에 대해서도 반박이 만만치 않다.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이 이미 다국어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어 외국인 불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위성사진과 고정밀 지도를 결합하면 보안시설 좌표가 더 정확히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한국이 전 세계 유일하게 지도 반출을 제한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도 고정밀 지도 반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은 자체 디지털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이 구글, 아마존과 맞서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8월 11일 결정을 앞두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 결과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협상 대표단에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에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국가 안보와 정보 주도권 측면에서 신중하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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