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홍역 다시 창궐… 전문가들 “백신 회의론 탓”
||2025.07.10
||2025.07.10
미국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홍역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8일(현지 시각) 올해 들어 보고된 홍역 확진자가 1267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2000년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홍역 ‘근절(elimination)’을 선언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이미 38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확진자가 확인됐으며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남서부 지역에서 대규모 유행이 발생하고 있다.
CDC는 확진자 중 대부분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어린이들이며 일부에서는 폐렴·뇌염 등 심각한 합병증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했다.
실제 이번 유행으로 인해 최소 3명이 사망했고 150명 이상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사망자 중 2명은 유아, 1명은 성인으로 확인됐다. 2015년 이후 미국 내 홍역으로 인한 사망자는 이번이 처음이다.
홍역은 전파력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로, 기침이나 재채기 등으로 쉽게 퍼진다. 감염자의 90% 이상이 면역력이 없는 경우에는 노출만으로도 전염된다.
CDC는 “홍역은 백신으로 2회 접종 시 97% 이상의 예방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접종률 저하가 유행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률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팬데믹 이후 흔들린 공중보건 시스템과 ‘백신 회의론’ 확산을 꼽고 있다.
텍사스주의 한 카운티에서는 백신을 종교적 이유로 거부하는 주민들이 밀집한 지역에서 집단 발병이 발생했으며, 해당 지역의 MMR(홍역·유행성 이하선염·풍진) 백신 면제율은 14%에 이른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과장된 소문이 퍼지며 부모들이 접종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홍역 유행은 단순한 질병 문제를 넘어 미국 사회의 공중보건 체계 전반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정치권 인사와 유명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백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면서 과학적 근거보다 이념과 감정이 우선시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공중보건 예산이 삭감되고 예방접종 캠페인도 축소되면서 백신 접근성이 떨어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경우 미국은 홍역을 다시 ‘풍토병’으로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최근 논문을 통해 “현재의 접종률 추세가 유지된다면 향후 20~25년 안에 미국 내에서 매년 최대 85만명의 감염자와 2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연구팀은 MMR 백신 접종률을 5%만 끌어올려도 상황은 크게 개선될 수 있다며 예방 접종 확대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CDC는 아직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빠른 시일 내에 MMR 백신을 2차례 접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해외 여행을 앞둔 성인들에게도 추가 접종을 당부하고 있다.
한때 ‘근절된 질병’으로 인식되던 홍역이 다시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보건당국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홍역 유행은 단순한 의료 문제를 넘어 과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국가 보건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되묻는 사안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불신과 정치적 극단주의가 결합할 경우 감염병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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