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SUV 정점, 포르쉐 카이엔 GTS [시승기]
||2025.07.06
||2025.07.06
포르쉐의 첫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카이엔’이 등장했을 당시 브랜드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포르쉐가 본질을 버렸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은 결과적으로 무의미했다. 만약 카이엔이 ‘변절’의 상징이었다면 3세대까지 이어지는 진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 카이엔은 포르쉐를 위기에서 구해낸 전략적 모델이었다. 1990년대 말 파산 위기에 직면한 포르쉐는 생존을 위한 돌파구로 SUV 시장에 눈을 돌렸다. 2002년 첫 출시된 카이엔은 포르쉐가 개발한 스포츠카 박스터와 부품을 공유해 원가를 절감했으며 브랜드 최초의 SUV로 시장에 진입했다. ‘카이엔(Cayenne)’이라는 이름은 프랑스령 기아나의 수도 이름에서 따온 ‘카옌고추(Cayenne Pepper)’에서 유래됐다.
초기에는 ‘911’이라는 아이코닉 스포츠카 브랜드가 SUV를 만든 것에 대해 마니아들의 비판이 따랐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포르쉐 특유의 고성능과 SUV의 실용성이 결합된 카이엔은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며 브랜드 성장의 새로운 축이 됐다. 이후 S, GTS, 터보, 터보 S 등 고성능 모델은 물론, 쿠페형 SUV까지 라인업을 확장했다. 현재는 V6 가솔린, E-하이브리드, V8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갖췄다.
더 강렬해진 존재감
이번 시승 모델은 일반형과 터보 사이에 위치하는 ‘카이엔 GTS’다. 고성능 모델임을 상징하는 ‘GTS’는 ‘그란 투리스모 스포츠(Gran Turismo Sport)’의 약자다. 3세대 부분변경 모델인 카이엔 GTS는 디자인 측면에서 더욱 공격적인 인상을 준다.
전면부는 대형 공기흡입구가 넓어졌고 기존보다 각진 헤드램프와 가로로 길어진 ‘4 포인트 램프’가 눈길을 끈다. 측면 변화는 크지 않으나 블랙 포인트 요소와 새로운 휠 디자인이 적용됐다. 트림 레터링은 도어 하단에 배치됐다.
후면은 가로형 테일램프가 강화되고 중앙 제동등 영역이 넓어졌다. 하단에는 고성능 모델을 암시하는 4개의 배기구가 배치됐다.
디지털과 실용성의 조화
실내는 기존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요소가 강화됐다.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클러스터의 적용이다. 새롭게 구성된 클러스터는 덮개 없이도 높은 시인성을 제공하며 운전석 왼쪽에 마련된 시동 버튼도 버튼식으로 변경됐다.
센터 디스플레이는 대형 터치스크린 방식이며 하단에 공조 및 오디오 조작을 위한 물리 버튼이 추가됐다. 터치 방식은 적응이 필요하지만 물리 버튼 덕에 일부 불편함은 해소됐다.
2열 공간은 성인이 앉아도 넉넉하고 머리 공간도 충분하다. 트렁크는 기본 772리터(L), 2열을 접으면 최대 1708L까지 확장된다. 패밀리카로서도 손색이 없다. 차체 제원은 전장 4930밀리미터(㎜), 전폭 1983㎜, 전고 1674㎜, 휠베이스 2895㎜다.
V8 바이터보 엔진의 정제된 짜릿함
카이엔 GTS의 진가는 도로 위에서 발휘된다. 탑재된 4.0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67.3킬로그램미터(㎏·m)를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4.4초(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적용 기준), 최고속도는 시속 275㎞에 달한다.
무게 2.6톤의 차체를 가볍게 밀어붙이는 가속감과 함께 과격하지 않은 출력을 바탕으로 일상 주행에서도 편안한 승차감을 유지한다. 액티브 에어서스펜션은 노면 상황에 따라 차체 높이를 조절하고 주행 모드에 따라 승차감을 유연하게 변화시킨다. 도심 환경에서는 플래그십 SUV 혹은 세단을 타는 느낌이 든다.
스포츠 모드로 전환 시에는 배기음이 커지고 가속페달 반응이 날카로워진다. 8단 자동변속기는 민첩하게 반응하며 V8 엔진을 차체 앞에 배치했음에도 조향성이 우수하다. 네거티브 캠버 구조와 에어서스펜션이 조화를 이루며 고속 코너링에서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네거티브 캠버는 앞쪽 바퀴 상단이 차체 안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카이엔 GTS는 포르쉐의 정체성을 무너뜨린 모델이 아니라 고성능을 향한 도전과 진화의 결과물이다. 카이엔은 SUV도 스릴 있고 정교한 주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포르쉐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시승차량의 기본 가격은 1억9940만원, 옵션 포함 가격은 2억4700만원이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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