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호 100대 사건]〈18〉우리나라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성공
||2025.07.03
||2025.07.03
199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우주기술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지구 관측과 저궤도 이동통신, 우주과학 실험을 위해 선진국들이 앞다퉈 고성능 소형위성 경쟁을 전개했던 것과 대비됐다.
정부는 우주산업 개척 필요성을 인지, 1990년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우리별 1호 개발을 위해 총 27명의 학생이 영국·일본·미국 주요대학에 파견돼 기술을 배웠다.
이들이 우리별 1호 개발·발사계획에 참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한 결과 1992년 무게 48.6㎏, 크기 352×356×670㎜의 우리별 1호가 탄생했다.
발사는 8월 11일 프랑스령 기아나의 쿠루우주센터에서 이뤄졌다. 아리안4호에 실린 우리별 1호는 로켓 발사 약 23분 후 발사체로부터 분리됐다. 고도 1300㎞ 우주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우리별 1호는 19시35분에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과 첫 교신에 성공했다. 우리별 1호 제작과 발사에는 총 38억원이 투입됐다.
우리별 1호로 자신감은 얻은 우리나라는 곧바로 2호 개발에 돌입했다. 우리별 1호 발사 후 3개월 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우주 시대를 열었다. 우리별 2호는 KAIST에서 선발된 국내팀과 우리별 1호 제작에 참여했던 영국 서리대학팀이 협력해 개발됐다.
우리별 1호를 개발하며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로 우리별 2호 제작에는 국내 기술력이 빛을 발휘했다. 1만2000개 부품 중 827개를 국산 부품을 이용했으며, 17개 협력업체가 부품을 생산·공급했다. 우리 별 1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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