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상도 맘대로?” 미국이 지역마다 ‘번호판 디자인’이 다른 이유
||2025.07.01
||2025.07.01
운전대를 잡고 미국 전역을 횡단해본 사람이라면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마다 번호판 디자인이 전부 다르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색상, 배경 이미지, 슬로건까지 천차만별인 이 번호판들은 때로는 예술 작품 같고, 때로는 그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국은 각 주(State)마다 독립적으로 번호판을 발급한다. 때문에 50개 주와 특별구, 준 자치령을 포함해 사실상 50개 이상의 디자인이 존재하며, 같은 주 안에서도 특별 번호판, 취미용 번호판, 기념 번호판 등으로 나뉘기 때문에 번호판의 종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한국처럼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디자인의 번호판을 사용하는 나라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미국에서 차량 번호판 발급 권한은 연방정부가 아닌 각 주정부에 있다. 이는 미국이 연방제 국가로서 주마다 상당한 자치권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 주정부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디자인과 문구, 색상, 배경 이미지를 정해 번호판을 제작·발급한다. 하와이의 경우 무지개가 그려진 디자인을 사용하고, 콜로라도는 눈 덮인 산맥을 배경으로 삼는다. 뉴멕시코는 노란색과 빨간색의 강렬한 색 조합으로 이목을 끌며, 플로리다는 주 과일인 오렌지 그림을 넣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주 내에서도 번호판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 번호판 외에도 군 복무자용, 대학 동문용, 야구·축구 등 스포츠팀 후원용, 환경 보호 기금용 등 특정 목적이나 취미에 맞춘 번호판이 존재한다. 심지어 추가 비용만 지불하면 자신이 원하는 문구나 슬로건을 새긴 번호판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주에서는 ‘I♥NY’나 ‘Go Lakers’ 같은 메시지를 담은 번호판도 합법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이렇게 다양한 번호판 디자인은 주 정체성과 지역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각 주의 유명 관광지, 역사적 인물, 동식물, 문화유산을 배경 이미지로 넣어 지역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관광객 유치에 나서는 것이다. 네바다는 사막과 라스베이거스, 오리건은 삼나무 숲과 오리건 트레일, 알래스카는 북극곰과 오로라를 그려 넣는다. 운전자들 역시 자신이 속한 지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특별 번호판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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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개성 넘치는 번호판 디자인이 넘쳐나다 보니, 이를 평가하는 공식 단체도 존재한다. ALPCA(Automobile License Plate Collectors Association)라는 협회가 그 주인공이다. 1954년 창립된 ALPCA는 전 세계 3,000명 이상의 회원이 활동하는 번호판 수집가 단체로, 매년 미국 50개 주에서 발급된 번호판 디자인을 대상으로 ‘올해의 베스트 디자인’을 선정해 발표한다.
선정 기준은 디자인 완성도, 시인성, 창의성, 주 정체성 반영 여부 등이다. 최근 몇 년간은 몬태나주의 산맥과 초원을 담은 디자인, 뉴멕시코의 선명한 색감과 상징성이 높은 번호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23년에는 콜로라도의 ‘산맥 에디션’ 번호판이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이 번호판은 흰색 눈 덮인 산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운전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는 후문이다.
이 대회는 단순히 수집가들의 취미 행사에 그치지 않고, 각 주정부가 새 디자인을 도입할 때 참고 자료로도 활용된다. 주민들의 반응과 수요를 미리 가늠할 수 있어, 일종의 번호판 디자인 트렌드 리포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차량 번호판이 단조로운 디자인에 규격화되어 있어 색다른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작은 판때기 하나에 주민들의 자부심과 지역의 브랜드 가치가 담긴다. 내가 태어난 곳, 좋아하는 스포츠팀, 환경 보호 메시지 등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번호판을 선택하는 문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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