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기아 EV9, 대형 전기 SUV 시대의 문을 열다
||2025.06.12
||2025.06.12
[더퍼블릭=오두환 기자] 도로 위에서 전기차를 보는 일은 이럽지 않다. 하지만 기아 EV9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는 전기 SUV는 흔치 않다. EV9은 한눈에 봐도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인상을 준다. 이 차는 단순히 내연기관 SUV의 전기차 전환 모델이 아니다. EV9은 기아가 그리는 전기 SUV의 미래 청사진을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가장 과감하게 풀어낸 결과물이다.
5m가 넘는 거구 속에 숨은 진짜 강점 ‘공간’
EV9에 올라타자마자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단 하나. "와, 진짜 크다."
1열, 2열, 3열 어느 좌석에 앉아도 여유가 넘친다. 특히 2열 공간은 마치 고급 세단의 뒷좌석처럼 넉넉하다. 게다가 2열에는 스위블 시트까지 마련돼 있다. 좌석을 180도 돌려 3열과 마주보거나, 90도 돌려 측면으로 돌려두면 아이 카시트를 장착할 때도 허리를 덜 굽히게 된다.
플로어는 완전히 평평하다. 이는 전용 전기차 플랫폼(E-GMP)의 최대 강점 중 하나다. 중앙에 불룩 솟은 터널이 없는 바닥은 뒷좌석 승객들에게 자유로운 다리 움직임을 허락한다. 적재 공간 역시 풍부하다. 3열을 세운 상태에서도 제법 짐을 실을 수 있고, 캠핑이나 차박에도 손색이 없다. 파노라마 글라스루프가 개방감을 더하며, 수납공간도 곳곳에 알차게 배치됐다. 2열 컵홀더만 해도 무려 4개나 된다.
주행 성능 ‘전기 SUV의 여유로운 자신감’
이 거대한 차체가 이렇게 쉽게 나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초반 가속은 부드럽고 강력하다.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가 2.3톤에 달하는 덩치를 가뿐히 밀어낸다. 변속 충격도 없고, 속도계 바늘은 부드럽게 올라간다. 방지턱을 넘을 때의 승차감도 인상적이다. 전반적인 도심 주행 질감은 매우 세련됐다.
제동 성능 역시 안정적이다. 무거운 차체를 반복적으로 감속시키면서도 브레이크 페달 감각은 일정하다. 긴 주행거리를 책임지는 99.8kWh 대용량 배터리는 장거리 주행의 불안을 크게 줄인다. E-GMP 플랫폼 덕분에 400V/800V 초고속 충전도 지원하고, 외부로 전력을 공급하는 V2L 기능도 갖췄다.
다만, 고속주행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면이 좋지 않은 고속도로 구간에서는 약간의 출렁임이 느껴진다. 프레임바디 픽업트럭 특유의 떨림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국형 모델은 승차감을 우선한 세팅이라 장거리 고속 안정성에서는 다소 물렁하다는 인상이 남는다. 스티어링 반응도 반 박자 여유롭게 따라와, 운전 재미를 추구하는 운전자에겐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회생제동의 이질감도 있다. 다단계로 조절이 가능하지만, 급격히 감속되는 느낌이 운전자에 따라 어색할 수 있다.
디자인 ‘존재감, 그것으로 충분’
외관은 한 마디로 '존재감의 결정체'다. 각진 실루엣과 큼직한 차체, 디지털 타이거 노즈 그릴이 한눈에 EV9임을 알아보게 만든다. 특히 야간에 빛나는 디지털 패턴 라이팅 그릴은 주차장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끈다.
실내 역시 첨단 기능으로 가득하다. OTA(Over-The-Air) 업데이트로 소프트웨어 기능을 꾸준히 개선할 수 있고, 다양한 전자식 보조 시스템이 운전자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다만, 프리미엄 감성은 조금 부족하다.
디스플레이 UI가 단조로워 아쉽다. 정전식 터치 버튼은 눌러야 인식되는 딜레이가 있으며, 차량 가격대를 고려하면 소재감에서도 고급 브랜드와의 차별화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 ‘여전히 높은 문턱’
사실 EV9의 가장 큰 논란은 가격이다. 8천만원대부터 시작해 상위 트림은 1억원에 육박한다. 이 가격이면 프리미엄 브랜드 수입 SUV도 경쟁군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EV9이 경쟁력 있는 이유는 경쟁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이만한 크기의 순수 전기 3열 SUV는 시장에서 사실상 블루오션이다.
99.8kWh의 대용량 배터리와 한 번 충전으로 확보되는 긴 주행거리는 전기차 실사용자의 불안을 덜어준다. 최근 일부 할부 및 리스 프로그램, 할인 프로모션도 제공돼 진입 장벽을 조금 낮춰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들 입장에선 "이 돈이면…"이라는 고민을 피하기 어렵다.
전기 SUV의 '게임 체인저'
기아 EV9은 분명히 현재 대형 전기 SUV 시장의 선두주자다. 공간, 주행 질감, 첨단 기능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다만 가격대에 걸맞은 프리미엄 감성은 조금 더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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