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문가의 시대, ‘버티컬 AI’가 온다
||2025.06.09
||2025.06.09
2025년 인공지능(AI) 산업은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범용 AI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특정 산업의 언어를 배우고 복잡한 문제를 정밀하게 파고드는 '버티컬 AI(Vertical AI)'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버티컬 AI는 의료·제조·금융·패션 등 각 산업 현장에 깊숙이 침투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AI다. 산업 특유의 언어와 규제, 업무 흐름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알고리즘을 설계해 정밀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범용 AI가 만능 공구라면, 버티컬 AI는 외과의사의 수술용 로봇이나 금융 전문가의 맞춤 투자 알고리즘처럼 한 분야에 특화된 '디지털 전문가'다.
버티컬 AI가 주목받는 첫 번째 이유는 '정밀성'이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자율주행차와 로봇 개발을 위해 자체 슈퍼컴퓨터 '도조(Dojo)'를 활용하고 있다. 테슬라는 도조를 통해 차량 주행 데이터를 실시간 학습하면서 완전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학습 속도를 76% 단축시켰고, 창고 로봇 '옵티머스'의 인식 정확도도 98.7%에 달하게 했다. AI가 곧 생산성의 바로미터로 작동하는 셈이다.
두 번째는 '경제적 파급력'이다.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는 산업별로 '수직 온톨로지(Vertical Ontology)'를 구축해 각 부문의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분석해 낸다. 의료·국방·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미국 국방부와 9억 달러(약 1조2235억원) 규모의 AI 시스템 구축 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익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처럼 버티컬 AI는 산업의 '고질적 병목'을 해결하면서도 높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 밖에도 버티컬 AI는 '규제와 윤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 기존의 범용 AI는 복잡한 규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 어렵지만, 버티컬 AI는 산업별 규제와 윤리 기준을 알고리즘에 내재화해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쉽게 검증할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버티컬 AI의 흐름은 빠르게 확산 중이다. 대표적으로 NC AI는 게임 개발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패션 산업에 최적화된 생성형 AI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인 '바르코(VARCO) LLM'은 패션 분야 키워드 입력만으로 수 초 안에 10종 이상의 의류 디자인을 자동 생성한다. 한국어와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다국어 기능도 제공한다.
의료 분야에선 루닛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루닛의 AI 영상 분석 솔루션은 글로벌 의료 현장에서 실제 판독 보조 도구로 활용되며, 유럽과 아시아 등 500여개 병원에 공급되고 있다. 흉부 엑스레이에서 결핵을 검출하는 민감도와 특이도 측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을 입증했다. 기존 의료진의 진단 속도는 36% 향상됐고, 암 발견률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해외 금융권에서도 버티컬 AI는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살리언트 AI(Salient AI)는 고객 음성의 감정 상태를 실시간 분석해 최적의 상담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으며, 채무 상환율을 35% 향상시켰다. 이처럼 산업 맞춤형 AI는 인간 전문가를 보완하거나 때로는 능가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변화에는 과제가 따른다. 특정 기업의 데이터 독점 문제나 AI의 판단 오류로 인한 윤리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하지만 2030년까지 글로벌 GDP(세계 총생산)의 12%를 버티컬 AI가 차지할 것이라는 맥킨지(McKinsey)의 전망은 산업의 무게추가 어느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결국 버티컬 AI는 단순한 기술 진화가 아닌 산업 전략의 전환점이다. 기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산업의 문제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다. 오늘날 기업들은 AI를 도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AI를 어떤 맥락에서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버티컬 AI는 이제 생존 전략이며 미래 산업을 설계하는 핵심 도구다.
김경아 기자
kimk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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