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내고 손해는 각자?”… 민간 외면한 AI센터 사업, 또 유찰되나
||2025.06.09
||2025.06.09
'AI 100조 투자'를 1호 공약으로 내건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전 정부에서 시작된 2조원 규모의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이 1차 입찰에서 유찰된 후 재공고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일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 재입찰을 개시했다. 기한은 2일부터 13일까지로 공모 요건은 변경이 이뤄지지 않았다. 업계가 유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은 결정적 이유다. 조건이 전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입찰 기한만 늘린 꼴이기 때문이다.
국가AI컴퓨팅센터는 총 2조원 규모로 공공 51%와 민간 49% 지분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구축·운영하는 사업이다. 연산 성능 1엑사플롭스(EF) 이상의 컴퓨팅 인프라 확보와 국산 AI 반도체 비중 확대가 목표다. 첨단 GPU 1만장을 포함한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조달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학계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기업들이 참여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의문이다. 또 과도한 부담도 원인으로 꼽힌다.
민간 기업은 2030년까지 약 2000억원을 출자해야 하고, SPC 청산 시 공공투자 지분을 이자와 함께 매수해야 한다. 사업 존속이 어려워질 경우 기업이 정부에 이행 보증금을 반납해야 한다. 또 투입된 비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공모지침서에는 SPC 청산 시 공공은 민간에 이자를 포함한 출자금 전액의 현금 매수를 청구할 수 있고 민간은 이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반면 민간 기업에 주어지는 실질적 혜택은 저리 대출 정도에 그쳤다.
2월만 해도 기업·지자체 100여 곳이 해당 사업 참여의향서를 제출했다. 특히 삼성SDS의 경우 삼성전자·네이버·엘리스그룹과 꾸린 컨소시엄 참여가 유력했다. 이준희 삼성SDS 대표는 3월 주주총회에서 "국가에서 하는 것인 만큼 다방면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지만, 삼성 측이 막판에 참여 의사를 접으면서 지난달 30일 마감된 1차 입찰에는 응찰자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연장 공고에 들어갔음에도 정부가 공모 요건을 변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이전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장기 사업인 데다 낮은 수익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현재 공개된 조건으론 참여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새 공고를 낼 때를 기다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재입찰에서도 응찰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는 국가계약법 및 시행령에 따라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때 입찰 참가자격이나 출자 구조 등 주요 공모 요건을 변경해 ‘새로운 입찰’로 전환할 수 있다.
새 정부가 국가AI컴퓨팅센터와 관련해 기업 부담을 낮추는 쪽으로 요건을 바꾼 새 공고를 내 참여군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는 컨소시엄 SPC 지분 비율을 높이거나 사업 규모를 바꾸는 등 전반적인 수술을 기대하고 있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2026년도 예산 편성 지침에 GPU 구매나 임차가 필요할 경우 국가AI컴퓨팅센터를 우선 검토하라는 사항을 넣었다는 점 등이 기업이 우려하는 수익성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 본다"며 "해당 사업의 인센티브가 부각되고 있는 시점인 만큼 2차 공고 때 일부 기업들이 지원을 할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유찰 이후의 새로운 입찰까지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가AI컴퓨팅센터 1차 공고 유찰로 정부가 계획했던 일정은 차질을 빚게 됐다. 정부는 당초 지난달 30일까지 사업 참여 계획서를 접수하고 6월 기술·정책 평가, 7월 금융심사를 거쳐 8월 말 최종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어 9월 특별위원회 개최, 10월 SPC 설립 협약 체결, 11월 사업 착수를 통해 2027년 센터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이번 유찰로 인해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홍주연 기자
jyho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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