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 7 시대, 무선은 유선 넘을 수 있을까 [권용만의 긱랩]
||2025.06.03
||2025.06.03
이미 우리는 ‘무선’의 시대에 익숙해졌다. 무선 연결된 스마트폰은 필수품이 됐고 충전도 음악 감상도 무선이 기본인 시대가 됐다. PC 또한 2003년 인텔의 ‘센트리노(Centrino)’ 브랜드가 등장한 이후 이제는 네트워크 연결에 ‘무선’이 기본인 시대가 됐다. 데이터 전송을 위한 무선 네트워크 기술 ‘와이파이(Wi-Fi)’는 노트북 PC와 스마트폰 등 IT 기기를 넘어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도 ‘커넥티드 디바이스’ 시대를 넓혀 가고 있다.
여전히 ‘유선’ 연결의 가치는 확고하다. 와이파이 기술이 나름대로 빠르게 발전해 왔지만 지금까지 당대의 유선 연결 대비 확실한 우위를 점한 시기는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무선 연결을 위한 주파수는 유한하고 제법 값비싼 자원이다. 실제 사용 환경에서는 수신률이나 전파 활용 효율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기대했던 것보다 실제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이에 여전히 기가비트 이상의 성능을 위해서는 ‘유선’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제 바뀌고 있다. 본격적 계기는 ‘와이파이 6’ 기술이 기가비트 이상의 연결 성능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한 때부터다. 이제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와이파이 7’ 기술 탑재 기기들은 기가비트를 넘어 2.5Gbps 이상 유선 연결에 필적하는 전송 성능을 선보인다. 무선 연결이 전통적으로 값비싼 자원이라 했지만 이제는 가정에서도 유선 연결 대비 장비와 공사 비용을 따지면 고가의 ‘와이파이 7’ 공유기를 구입하는 게 더 경제적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주류 기술로 본격 진입 중인 와이파이 7
흔히 말하는 ‘와이파이 7’은 IEEE 802.11be 표준을 기반으로 하며 EHT(Extremely High Throughput)라는 별칭을 갖는다. 표준안은 공식적으로 지난 2024년 9월 26일 승인됐지만 실제 대응 장치들은 2023년부터 등장이 예고된 바 있다. 티피링크(TP-Link) 등이 표준안 이전부터 와이파이 7 기반 공유기 등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들 디바이스도 이미 하드웨어적으로는 최종안의 요구사항을 넘어서고 있어 최신 펌웨어 업데이트로 표준 규격에 대응할 수 있다.
‘와이파이 7’은 기존의 ‘와이파이 6’ 대비 한 번에 사용 가능한 채널 폭도 320MHz로 두 배 더 넓어졌고 기존 ‘와이파이 6E’에서 지원하던 6GHz 주파수 대역까지 지원을 포함해 총 3개의 대역을 사용한다. 몇 개의 대역을 모두 묶어서 사용할 수 있는 ‘멀티 링크 동작(MLO: Multi-Link Operation)’ 기술도 적용됐다. 이전의 ‘와이파이 6’는 모든 대역이 따로 사용됐지만 ‘와이파이 7’은 설정에 따라서 여러 대역을 하나의 연결로 묶어 사용해 성능을 높일 수 있다. 이 외에도 데이터 전송의 변복조 기술이 더 고도화됐고 주파수 사용 효율도 더 높아졌다.
‘와이파이 7’을 사용하려면 공유기와 지원 디바이스가 필요하다. 이 중 공유기는 현재 티피링크와 에이수스, EFM 네트웍스(EFM Networks: ipTIME 브랜드), 넷기어, 머큐시스 등 주요 업체들에서 선보이고 있다. 이들 제품의 가격대는 사양에 따라 10만원 이하부터 수십만원 대까지 있다. 초기에는 고가의 고성능 제품 위주였지만 최근에는 사양을 낮춘 보급형 제품들이 10만원 이하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사실 와이파이 7 공유기의 무선 성능과 이에 어울리는 유선 성능, 처리 성능을 모두 갖추려면 당분간은 가격이 크게 낮아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보급형 제품들은 이 부분에서 타협이 필요하다.
공유기 사양을 보는 방법도 ‘와이파이 7’에서는 조금 바뀌었다. 보통 공유기의 무선 사양은 기술 규격과 모든 주파수 대역폭에서 처리할 수 있는 최대 처리량을 함께 표기해 왔다. 이에 ‘와이파이 6’까지는 공유기의 모델 숫자가 높아도 실제 사용자가 쓸 수 있는 연결 성능과는 조금 괴리가 있었다. 하지만 와이파이 7의 MLO 기술은 여러 주파수대를 한번에 묶어 쓸 수 있어 실제 사용자가 쓸 수 있는 연결 성능 수준이 제법 높아진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여전히 실제 체감되는 성능 수준은 표기 대비 절반 정도에 그치기도 한다.
디바이스 측면에서는 최신 세대의 PC와 스마트폰 등에서부터 지원이 시작됐다. PC의 경우는 인텔이 최신 ‘코어 울트라 200시리즈’ 기반 플랫폼에서 인텔의 ‘BE200 시리즈’ 네트워크 어댑터로 2x2 안테나 구성에서 최대 5.8Gbps 연결을 지원한다. 이 BE200 시리즈는 현재 인텔의 최신 ‘이보’ 기반 제품이나 고급형 데스크톱 PC 메인보드에 포함돼 제공된다. AMD 플랫폼에서는 미디어텍의 MT7925 칩 기반 어댑터로 6.5Gbps 급 연결을 사용할 수 있다. 퀄컴 또한 ‘패스트커넥트 7900(FastConnect 7900)’ 칩에서 최대 5.8Gbps 연결을 사용할 수 있다.
와이파이 7 MLO 연결, 실제 ‘2Gbps 이상’ 전송 성능
개인적으로는 제법 오랫동안 ‘와이파이 5’급 보급형 라우터를 사용했고 최근에 ‘와이파이 6’ 보급형 라우터를 거쳐 ‘와이파이 7’ 환경을 갖췄다. 이번 테스트에 사용한 공유기는 에이수스의 ‘RT-BE92U’로, 모든 주파수 대역의 연결 성능을 합산하면 ‘BE9700’ 급 제품이다. 이 공유기에서 ‘속도’를 책임지는 대역은 6GHz대로, 최대 5764Mbps 전송 성능을 제공한다. 유선은 외부 WAN 연결과 내부 LAN 연결을 위해 10Gbps 포트 두 개, 2.5Gbps 포트 3개를 갖췄다. ‘10기가 인터넷’을 쓴다면 내부 네트워크 급의 외부 인터넷 성능을 쓸 수 있는 구성이다.
초기 설정에서 메인 네트워크 동작 모드는 모든 가용 주파수를 하나로 관리하는 ‘와이파이 7 MLO’로 설정했다. 이 경우 네트워크 SSID가 주파수 대역별로 나뉘지 않고 모든 주파수 대역이 하나의 SSID를 사용한다. 기존 와이파이 5, 6 기술 기반 디바이스가 연결되더라도 상황에 따라 알아서 적절한 주파수 대역과 기술로 끊김없이 연결된다. 현재 사용중인 ‘갤럭시 S24 FE’ 스마트폰은 6GHz ‘와이파이 6E’와 5GHz ‘와이파이 6’로 상황에 따라 전환된다. 다소 구형 기기들은 5GHz 와이파이 5 등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기술이 좋아진 덕분에 네트워크 관리가 제법 편해졌다.
성능 측면도 제법 인상적이다. 테스트는 에이수스 ‘RT-BE92U’에 2.5Gbps 유선 연결된 시놀로지 DS925+ NAS의 공유 폴더로의 전송 속도를 확인했다. 테스트에 사용한 디바이스는 와이파이 7 연결에 인텔 ‘BE201’ 어댑터를 사용한 에이수스 ‘젠북 S 14 OLED’ 노트북 PC와 에이수스 ‘ROG 스트릭스 Z890-E’ 메인보드를 사용한 데스크톱 PC를 사용했다. 와이파이 6 연결에는 인텔 ‘AX201’ 어댑터를 사용한 HP 엘리트북 830 G8 노트북 PC를 사용했다. 비교군으로는 데스크톱 PC에서의 2.5기가비트 유선 연결과 1기가비트 유선 연결 성능을 기준으로 삼았다.
평범한 기가비트 연결이라면 순차 전송에서 대략 120MB/s 정도의 전송 속도가 나온다. 유선 연결 속도를 2.5기가비트로 올리면 대략 300MB/s 정도의 전송 속도를 볼 수 있다. 이 중 달성 목표 성능을 어디로 잡느냐가 기준이 될 텐데, 에이수스 젠북 S 14의 5/6GHz MLO를 사용한 와이파이 7 연결은 280MB/s 정도의 전송 성능으로 2.5기가비트 이더넷의 성능에 근접했다. 물론 안테나 설치 환경이 열악한 데스크톱 PC에서의 결과는 이보다 다소 낮아서 테스트 당시에는 212MB/s 정도의 성능을 보였다.
한편, 의외로 이전 세대 ‘와이파이 6’ 또한 제대로 구성한다면 아직 제법 저력을 보여주는 규격임도 확인할 수 있다. 테스트에 사용한 HP 엘리트북 830 G8의 AX201 5GHz 160MHz 2.4Gbps 연결도 유선 기가비트 이더넷의 전송속도를 훌쩍 넘는 198MB/s 전송 속도를 보일 정도였다. 전파 수신율의 변수가 있겠지만 당장 집 안의 PC 몇 대 정도만 기가비트 급으로 연결한다면 굳이 유선 선로를 방마다 포설하는 대공사를 하기보다는 고성능 유무선 공유기가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일 상황이다.
고성능 와이파이 7 공유기, 몇몇 상황에서는 의외로 ‘가성비’ 선택
이번에 테스트에 사용한 에이수스의 ‘RT-BE92U’ 공유기는 현재 국내에서 38만원 정도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 일반적인 공유기 가격을 생각한다면 높은 가격대라 할 만 한데, 기술적 구성을 생각하면 이 정도 사양의 공유기 가격이 앞으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장 무선의 ‘BE9700’급 처리 성능이나 유선 10기가, 2.5기가비트 이더넷 포트 구성을 지원하기 위한 고성능 하드웨어는 가격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는 앞으로 공유기를 위한 칩셋들의 성능 향상과 가격 하락을 기대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 공유기가 제공하는 와이파이 7의 ‘2.5기가비트’급 전송 성능을 유선으로 확장할 때의 비용을 생각하면 조금 계산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인터넷 라인이 들어오는 곳과 PC가 설치된 곳이 다르고, PC가 한 대가 아니라면 전체 비용 계산이 조금 복잡해질 것이다. PC가 설치될 곳까지 네트워크 선로를 깔끔하게 포설하기 위한 수고나 공사 비용도 생각해야 하고, 선로 끝에 스위치허브라도 구성한다면 2.5기가비트급 허브부터는 개당 가격도 만만치 않다. 자가가 아니라면 공사에 나서는 것 자체도 부담이고 구축 아파트라면 배선 포설이 생각 이상의 대공사가 될 수도 있다.
와이파이 7급 고성능 공유기는 전송 성능 때문에 유선 연결을 고집해야 했던 시대를 마무리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는 이미 십여년 전부터 ‘10기가비트’가 차세대 유선 규격으로 논의됐지만, 개인용으로는 비싼 장비 가격과 함께 막상 사용하는 PC가 10기가비트 성능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문제로 아직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초당 1.2GB를 받는 10기가비트 성능을 지속적으로 온전히 받으려면 스토리지 또한 DRAM 캐시가 있는 고급형 NVMe SSD가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PC는 이러한 10기가비트 환경을 위한 요건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
현실적으로는 현재 보급형 SSD들은 2.5기가비트급 성능도 지속 기록으로 다 받아내기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2.5기가비트 정도면 충분히 기존의 기가비트보다 개선된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때, 무선으로 실제 2.5기가비트 수준의 전송 성능을 얻을 수 있는 와이파이 7이라면 오히려 무선이 유선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 공유기의 가격이 조금만 더 낮아진다면 더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무선으로 '기가비트'급 성능을 원한다면, 현재 기준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선택은 5GHz 대역에서 최대 2.4Gbps 속도를 지원하는 와이파이 6 'AX3000'급 공유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제품군은 10만 원 이하의 가격대로 안정화됐고 이를 지원하는 디바이스도 충분히 많아 실용성이 높다. 이 정도 사양이면 몇 년은 큰 불편 없이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 이제는 고속 전송을 위해 반드시 유선 연결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 머지않아 유선보다 무선이 더 경제적인 선택이 되는 날도 기대할 수 있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고객님만을 위한 맞춤 차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