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11, 하이브리드로 진화하다 [시승기]
||2025.05.25
||2025.05.25
포르쉐 911의 변화는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늘 민감한 이슈다. 특히 전동화는 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품은 911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들도 많다. 무게 증가로 인한 주행 성능 저하가 가장 큰 이유다.
그럼에도 포르쉐는 911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규제에 타협한 결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타협이 아닌 ‘진보’다. 규제를 수용하면서도 성능 개선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911의 T-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단순한 탄소 감축 수단이 아니다. 포르쉐는 이를 위해 엔진까지 새롭게 설계하며 완전히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완성했다.
기능성을 더한 디자인 변화
부분변경된 911(코드명 992.2)은 기존의 디자인 정체성에 기능성을 추가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원형 헤드램프는 기존 틀을 유지하되, 포르쉐를 상징하는 ‘4 포인트 램프’를 좌우로 길게 늘려 시인성과 개성을 강화했다. 위아래에 삽입된 HD 매트릭스 포르쉐 디테일 역시 발광 구조로 변경됐다.
시승 모델인 911 카레라4 GTS는 공력(空力) 성능을 고려한 범퍼 디자인이 특징이다. 양쪽의 상어 아가미 형상 흡입구는 주행 중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며 주행 시 바람을 빠르게 뒤쪽으로 흘려보낸다.
측면 변화는 비교적 적다. 시승차에는 카본 파츠를 적용한 휠이 탑재됐고, 도어의 레터링은 ‘T-Hybrid’로 바뀌었다. 루프 라인과 두꺼운 리어 펜더 등 911 특유의 실루엣은 유지됐다. 후면에서는 테일램프가 이전보다 안쪽으로 길어졌고, 새롭게 설계된 배기 라인은 머플러 위치를 중앙으로 옮겼다.
감성과 디지털의 조화
실내는 익숙하면서도 세심한 변화가 눈에 띈다. 포르쉐를 상징하는 특정 요소의 변화를 통해 새로움을 극대화한 모양새다. 운전석 오른쪽에 위치한 시동 방식이 대표적인 예다. 포르쉐는 과거 레이스카에 사용되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 왔다. 초기에는 열쇠를 꽂고 돌리는 방식을 적용했고 이후에는 더미 키를 사용했다. 그리고 현재는 버튼으로 변경됐다. 이 방식은 포르쉐 특유의 감성이 퇴색된 듯한 느낌이 든다.
또 다른 상징인 클러스터도 완전 디지털 방식으로 변경됐다. 911은 전통적으로 엔진회전계를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두 개의 원형 클러스터를 배치했다. 이전 모델도 디지털 클러스터를 적용하긴 했지만 엔진 회전계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반면, 신형은 모든 클러스터가 디지털로 변경됐다. 과거 5개의 원형 클러스터는 디지털 방식으로 표현됐다. 주행 환경 또는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은 반갑다.
센터 디스플레이에는 하이브리드 작동 상태를 보여주는 전용 페이지가 추가됐고,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의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은 검정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새롭게 설계된 파워트레인
포르쉐는 T-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위해 엔진도 전면 재설계했다. 기존 3.0리터(L) 수평대향 6기통 트윈 터보 엔진 대신 3.6L 싱글 터보 엔진을 탑재했다. 전기 모터가 터빈을 돌리는 구조로 저속에서도 터보랙이 사라졌고, 응답성은 더욱 향상됐다.
새 파워트레인 탑재로 가속 성능도 달라졌다. 가속 페달을 밟는 즉시 속도가 상승한다. 무엇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작동하는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최고출력은 541마력으로 기존보다 58마력 상승했고, 최대토크는 62.6㎏·m로 증가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3초로, 이전 모델보다 0.3초 빨라졌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스포츠 리스폰스’ 기능을 활성화하면, 8단 PDK 변속기가 최대한 변속 시점을 늦추고 모든 출력을 끝까지 쏟아내며 달린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가져올 것으로 우려됐던 무게 증가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설계 변화 덕분이다. 웨이스트게이트와 벨트 드라이브 시스템을 제거한 신형 엔진은 높이가 11밀리미터(㎜) 낮아졌고, 그만큼 무게 중심도 낮아졌다. 덕분에 고속 주행이나 연속 코너링 시에도 차체의 움직임이 정교하게 유지된다. 급격한 조향에도 차체가 움찔거리거나 기우뚱거리는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4륜구동 시스템과 리어 액슬 스티어링 시스템의 조합은 운전자의 조향 의도를 정밀하게 반영한다.
아쉬움과 한계도 존재
승차감은 여전히 부드럽고 일상 주행에서도 안정감이 돋보인다. 불쾌한 충격은 걸러내면서 노면 정보를 정확히 전달한다. 다만 하부 방음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휠하우스에서 튀는 자갈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린다. 방음 소재 적용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 다른 단점은 가격이다. 카레라4 GTS는 기본 가격이 2억3940만원, 시승차는 옵션 포함 2억9170만원에 달한다. 성능 향상에 비례한 가격이지만, '가성비'를 논하기는 어렵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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