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남용 우려에도 무분별 ‘위고비’ 처방 여전
||2025.05.21
||2025.05.21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국내 출시된 지 반년이 넘은 가운데, 여전히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 목적으로 무분별한 처방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방 기준에 못 미치는 환자가 소위 ‘위고비 성지’로 불리는 병원을 통해 위고비를 처방받고, 연계된 약국에서 의약품을 공급받는 형태가 만연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종로, 강남 소재 다양한 병의원을 중심으로 간단한 문진과 진료만으로 위고비 처방이 쉽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GLP(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치료제인 위고비는 췌장에서 인슐린 방출을 증가시키고, 식욕 감소를 일으키는 뇌 수용체를 표적으로 삼아 환자의 식욕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체중 감량 효능을 발휘한다.
위고비는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조제·복약 지도가 필요하되,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전문의약품이다. 위고비는 펜 모양 주사기 1개와 주사바늘 4개가 한 박스로, 주 1회 1개월씩 투여하도록 제조됐다. 용량은 0.25밀리그램(㎎), 0.5㎎, 1㎎, 1.7㎎, 2.4㎎ 등 5가지로 구성돼 있다.
현재 위고비 처방 기준은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인 성인과, BMI 27 이상이면서 고혈압·당뇨 등 비만 관련 질환이 동반된 경우다. 35세 이상 비만 질환이 없는 남성이 위고비를 투여하려면 신장 180센티미터(㎝)에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처방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위고비를 처방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기업 종사자인 A씨는 종로에 위치한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인바디 측정 후 대면 진료를 통해 위고비를 처방받았다. A씨는 “간단한 질의응답지를 작성 후 인바디를 측정했는데, 최근 정기 건강검진에서 확인한 BMI 지수 대비 지나치게 높게 나왔다”며 “의사와 고혈압 여부 등 10분 상담받은 후 위고비를 처방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IT업계 관계자 B씨는 강남 소재 내과에서 위고비를 처방받았다. B씨는 “위고비 처방 성지 병원에서 인바디를 측정하면 대부분 BMI 지수가 높게 나온다”며 “사회생활하는 30대 이상 성인은 종종 고혈압 등 성인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수록 위고비 처방을 더욱 쉽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동네 의원에서는 의약분업에도 불구하고 자가주사제를 직접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사법 제23조에 따라 약국이 없는 지역 또는 재난 발생 시 의사가 직접 조제가 가능하지만, 일부 병의원이 처방전 발급 없이 원내 조제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의료기관에서 주사제를 주사하는 경우 원내 제조가 가능하지만, 의원에서 위고비를 받은 몇몇 환자들은 원내 주사 시술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위고비를 구매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 병의원이 위고비를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이유는 비급여 약물이란 점에서 환자당 고마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고비 소비자 가격은 42만원에서 80만원 사이로 다양하게 형성돼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최대 100만원까지 판매되고 있다.
또한 다이어트 클리닉 등에서 정기 방문 유도 및 추가 시술 연계로 사업화가 가능해 위고비 처방을 마케팅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BMI 27 이상 또는 동반 질환 여부는 의사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회색지대로, 간단한 문진만으로 적응증 진단이 가능하다.
무분별한 처방에 대한 규제도 쉽지 않다. 자가 조제 등 약사법 위반 사례가 아니라면, 명백한 과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의사의 처방 행위를 규제할 수 없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및 대면 진료 없는 처방을 단속하고 있으며, 식약처는 위고비 등 고가 전문약 처방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한 상황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저체중을 원하는 미용적 상황이 아니라면, 성인병 예방을 위한 위고비 사용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한 내분비외과 전문의는 “처방 기준 미달 환자에게 위고비를 처방하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저용량 제품을 적정량 사용한다면 일반적인 비만 환자들의 성인병 예방에 일정 부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다만 부작용을 감내해야 할 리스크가 따를 수 있으니 전문가와 충분한 상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독극물통제센터(PCC)는 위고비를 과다 투여할 시 메스꺼움, 구토, 복통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부분의 비만 치료제는 제2형 당뇨병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만큼, 고용량을 투여할 시 저혈당·저혈압 위험도 존재한다.
더불어 미국에서는 위고비 등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사용으로 탈모 환자가 급증했다는 보고도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위고비가 삭센다 대비 부작용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BMI 수치가 평균 이상인 환자가 적정량을 맞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최근 위고비 환자가 여성보다 남성이 많아졌는데, 비만·성인병 예방을 위한 약물 사용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나 저체중을 위한 사용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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