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車업계 ‘반도체 독립 전쟁’에...현대차도 본격 참전
||2025.03.25
||2025.03.25
[더퍼블릭=이유정 기자] 현대자동차가 차량용 반도체의 내재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극심했던 반도체 수급난을 교훈 삼아,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반도체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차량용 반도체의 자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동차와 첨단 IT 기술의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된 데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심화된 반도체 수급난이 이러한 움직임을 촉진했다.
이에 따라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반도체 설계 조직을 신설하거나 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계열사를 통해 반도체 칩을 설계하고 위탁 생산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현대차도 자체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강화하고, 연구개발 거점을 국내외로 확장하는 한편, 계열사를 중심으로 차량용 칩의 양산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
현대차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소를 설립하고, 현대모비스와 함께 전력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의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단순한 공급처 다변화를 넘어, 장기적으로는 전동화 파워트레인과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차량 제어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기술을 내재화함으로써 미래차 경쟁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이 같은 흐름은 현대차만의 움직임이 아니다. 테슬라와 비야디(BYD), 도요타,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 역시 반도체 독립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테슬라는 초창기부터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고 이를 위탁 생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중국 비야디는 직접 반도체를 개발하고 생산하며, 자율주행 기술과 연계한 칩 개발에 약 2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도요타는 자회사인 덴소와 합작사를 통해 반도체 공동 개발에 나섰고, 폴크스바겐은 사업부 ‘카리아드’를 통해 맞춤형 반도체 설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러 반도체 칩에 분산돼 있던 기능을 통합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스텔란티스는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폭스콘과 협력해,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의 80%를 대체할 수 있는 4종의 칩을 공동 개발 중이다. 이는 차량 부품의 복잡성을 줄이고 공급망을 단순화해, 안정적인 생산 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대자동차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단기적으로는 반도체 설계·검증 역량을 끌어올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시스템반도체 기술까지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현대모비스는 현재 차량용 반도체의 초기 설계부터 시제품 생산까지 가능한 기술력을 확보했으며, 전장 부품을 담당하는 현대오트론을 중심으로 차량 제어용 칩에 대한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반도체 자체 개발에 나서는 이유는 단순한 공급 안정화 차원을 넘어선다. 최근의 전기차, 자율주행차는 차량 1대당 수백 개의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데, 기존에는 외부 반도체 기업 의존도가 높아 가격 협상력과 설계 자유도에 제약이 있었다.
또한 차량용 반도체는 고성능 칩에 비해 이윤이 낮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경우도 잦았다. 이에 따라 자동차 회사들은 기술 난도가 비교적 높지 않은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고, 이를 파운드리(위탁 생산) 방식으로 생산하는 경로를 택하고 있다.
현대차는 자사 전기차 플랫폼인 ‘E-GMP’를 중심으로, 차량용 전력반도체 최적화를 위해 실리콘카바이드(SiC) 기반의 파워칩 적용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이 칩은 전력 효율과 내열성이 뛰어나 전기차 주행거리와 충전 효율 개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반도체 내재화 경쟁은 기술 독립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유럽연합도 반도체 전략 자립을 위한 ‘EU칩법’을 본격 추진하면서, 각국은 자국 내 생산 역량과 공급 안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도 단순한 기술 확보를 넘어, 글로벌 주요 시장에 연구·개발 및 테스트 거점을 분산 배치해 공급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중심으로 차량 구조가 빠르게 전환되면서, 반도체 기술은 단순 부품이 아닌 전략 자산이 됐다”며 “기술 내재화를 통해 경쟁사 대비 차별화된 성능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설명했다.
반도체는 이제 자동차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핵심 무기가 됐다.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기술 내재화에 나선 이유는, 단순히 비용 절감이나 공급 안정성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미래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 다시 말해 다음 시대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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