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는 포르쉐 선물했는데, 김하성은 어떨까? “TB 역사상 최고 7번” 대우도 역대급이다
||2025.02.06
||2025.02.06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모든 선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등번호에 대한 애착이 큰 선수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분신이자, 자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장 고민이 되는 시기가 이적을 할 때다. 자신이 달고 싶은 번호를 달고 있는 기존 선수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시즌을 앞두고 LA 다저스와 10년 총액 7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계약에 서명한 오타니 쇼헤이(31·LA 다저스)도 그랬다. 오타니는 오랜 기간 17번을 달고 뛰었고, 2018년 LA 에인절스에 입단할 당시에도 17번을 골랐다. 다저스에서도 17번을 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베테랑 불펜 투수 조 켈리의 번호였기 때문이다.
조 켈리는 2012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통산 400경기 이상을 뛴 베테랑 중의 베테랑 선수였다. 동양에 비해 서양이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문화라고 해도 이런 ‘짬밥’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오타니가 계약 후 등번호에 대한 말을 잘 꺼내지 못한 이유다. 만약 켈리가 17번을 계속 달고 뛰겠다고 하면 오타니가 다른 번호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켈리가 선뜻 나서 오타니에게 번호를 주겠다고 했고, 자신은 예전 류현진의 번호였던 99번을 달았다. 오타니라는 슈퍼스타를 환영하는 켈리의 마음이기도 했겠지만, 켈리에게 17번은 그렇게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번호는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감동한 오타니는 켈리에게 고가의 스포츠카를 선물해 화제를 모았다. 그만큼 기쁜 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야구 최고 야수로 뽑히는 추신수도 KBO리그로 돌아올 당시 등번호를 양보받았다. 17번은 추신수의 상징과도 같은 번호였고 추신수도 이 번호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런데 SSG 입단 당시에는 후배 이태양이 이 번호를 달고 있었다. 이태양은 추신수의 입단이 결정되자 곧바로 17번을 양보했고, 추신수는 고가의 시계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지난 1월 30일(한국시간) 탬파베이와 계약한 김하성(30) 또한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역시 등번호를 양보 받았기 때문이다. 김하성을 상징하는 등번호는 7번이다. 샌디에이고에 입단할 당시에도 7번을 달았다. 그런데 탬파베이와 계약하고 보니 7번의 주인공이 있었다. 내야수 호세 카바예로의 번호였다.
파나마 출신의 카바예로는 2023년 시애틀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024년 탬파베이에서 한 시즌을 뛰었다. 시애틀 시절에는 등번호 76번을 달았는데 탬파베이로 이적하면서 7번으로 바꿨다. 카바예로의 메이저리그 경력이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난해 139경기에 나간 주전급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44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등 주력에서 돋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년 계약을 한데다 2025년 시즌 뒤 옵트아웃(잔여계약을 포기하고 FA 자격을 획득) 가능성이 높은 김하성도 등번호를 내놓으라 하기 쉽지 않은 여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카바예로가 양보를 하면서 김하성이 7번을 달 수 있었다. 카바예로는 올 시즌 77번으로 등번호를 바꿨다. ‘7’이라는 숫자에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만, 주전 유격수로 확실시되는 김하성을 위해 자신의 번호를 양보했다. 오타니가 그랬던 것처럼 포르쉐까지는 아니어도 카바예로를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해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탬파베이는 구단 역사도 타 구단에 비하면 짧은 편이고, 7번을 달았던 슈퍼스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5일(한국시간) 김하성의 등번호를 소개하면서 “김하성이 (어깨) 수술 탓에 시즌 첫 한 달을 결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면서 “그리고 김하성이 옵트아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레이스 역사상 최고의 7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등번호에 관심을 드러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카바예로가 김하성에게 7번을 양보하고 77번을 새로 택했다. 구단 역사상 77번을 유니폼에 달고 뛰는 선수는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탬파베이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등번호 7번의 선수가 로건 모리슨이라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모리슨은 탬파베이 역사상 가장 생산성이 높은 등번호 7번의 선수였다.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 3.4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좌투좌타의 1루 겸 외야수였던 모리슨은 2010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이후 시애틀을 거쳐 2016년 탬파베이로 이적했다. 모리슨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탬파베이에서 2년을 뛰며 256경기에서 타율 0.243, 52홈런, 128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13이라는 좋은 성적을 남겼다. 통계전문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모리슨은 2년간 3.4의 WAR을 기록했다. 통산 WAR이 3.9임을 고려하면 탬파베이에서 전성기를 보낸 셈이다. 다만 모리슨은 7번은 탬파베이에서만 달았고, 나머지 구단에서는 다른 등번호를 썼다.
김하성이 옵트아웃을 하지 않는다면 근래 성적을 놓고 볼 때 모리슨의 3.4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시즌 만에 뛰어 넘을 가능성도 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집계에 따르면 김하성은 2021년 WAR 2.1, 2022년 4.9, 2023년 5.8, 2024년 2.6을 기록했다. 김하성 경력의 가장 화려한 시기인 2023년까지 가지 않더라도 2022년 성적만 되어도 모리슨의 기록을 한 번에 넘는 셈이다. 왜 팀이 김하성에게 큰 기대를 거는지 잘 알 수 있다.
김하성은 탬파베이의 귀한 몸이다. 김하성은 2년간 2900만 달러를 보장받는다. 올해 1300만 달러를 받고, 2026년 1600만 달러가 보장되어 있다. 올해는 어깨 부상 재활 탓에 4월은 결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1300만 달러를 받는다. 여기에 타석 수에 따라 200만 달러의 인센티브가 더해진다. 당장 올해 탬파베이 선수 중 최고 연봉자이자, 10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세 명의 선수 중 하나다. FA 시장에서 많은 돈을 쓰기 보다는 저비용 고효율의 선수를 찾아 나섰던 게 탬파베이인데 그만큼 김하성의 능력에 확신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봉 외의 대우도 특급이다. 통역은 물론, 트레이너 한 명도 붙여준다. 통역은 당연한 것이지만, 전담 트레이너의 급여를 구단이 지불한다는 것은 특별 대우다. 여기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비즈니스 항공권을 8장이나 제공하고, 영어 교육도 돕기로 했다. 아주 긴 장기 계약도 아닌데 탬파베이로서는 나름 성의를 다한 셈이다.
김하성 영입전을 진두지휘한 에릭 니엔더 사장은 4일 열린 온라인 입단식 및 기자회견 당시 “김하성은 엄청나게 재능 있는 선수디. 우리 팀은 김하성에게 일찍부터 관심을 보였다. 재활과 회복을 거쳐 우리 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확신한 끝에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됐다”면서 “몇 년 동안 샌디에이고서 뛰는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엄청나게 재능 있는 선수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팀 승리에 도움을 주는 선수를 데려와서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가 김하성과 계약에 합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우리 팀 선수들, 또 에반 롱고리아와 같은 전 소속 선수들에게도 그를 칭찬하는 메시지가 많이 날아왔다. 우리 구단이 그에 대해 검증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하성도 4월 말에서 5월 초면 메이저리그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팀에서의 활약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