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지위 유지” AI 교과서 다음 과제는 가격 책정
||2025.01.23
||2025.01.23
정부가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육자료로 낮추는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교과서’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다만 다음달 국회 재표결·가처분 신청 등이 이뤄질 수 있으며 가격 책정도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육계 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21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국무회의를 통해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했다. 이로써 AI 디지털교과서는 교과서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이에 교과서 발행사와 교육부 간 가격 협상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최 대행은 재의 요구 이유에 대해 "이 법안이 시행되면 AI 디지털교과서 사용 문제를 넘어 학생들이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IoT), 클라우드, 유비쿼터스 등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맞춤형 학습을 할 수 있는 교과서 사용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는 학생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와 미래 대비, 국가 경쟁력 확보에 치명적인 타격을 초래할 수 있으며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이라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재의 요구된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300명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야권 의석수는 192석으로, 법안 통과를 위해선 여당 이탈표가 최소 8표 필요하다는 점에서 재의 요구권을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AI 디지털교과서 발행사인 비상교육, 천재교육, 아이스크림미디어, 클래스팅 등에게 교과서 지위 유지는 희소식이다. AI 교과서가 교육자료로 격하됐다면 사용률이 크게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 과목당 연간 구독료로 3만7500원으로 책정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반면 교과서 발행사들은 권당 10만원 이상을 요구하고 있어 양측의 입장차가 큰 상태다.
교과서 발행사 관계자는 "3만7500원은 시도 교육청이 제시한 일방적인 액수로 공식적인 가격이 아니다"라며 "교과서 지위가 확보되고 전면 시행이 결정된 만큼 본격적인 가격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간 구도료로 최소 8만원을 기대하고 있다. 교육부가 언급하고 있는 3만원대로는 개발, 유지, 보수 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적자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협상 과정에서 구독료가 오를 경우, 정부가 추가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 17개 시도 교육청이 오른 만큼의 예산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의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따른 지방교육재정부담 전망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4년 간의 연간 4만2000원으로 가정하면 2조8353억원이, 8만4000원으로 책정하면 6조6156억원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지난 17일에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검증 청문회에서 "서책형 교과서 가격은 권당 평균 1만원인데 반해 AI 교과서의 경우 업체는 10만원 수준을 요구하고 있어 10배 정도 비싸다"며 "이걸 지방교육재정으로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AI 교과서의 안정적인 도입을 위해 단계적 접근을 선택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제29조는 '학교에서는 교육부 장관이 검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교육부는 올해에 한해서는 AI 교과서 도입을 학교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과서라고 해서 무조건 의무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장관령에 따라 자율 채택 사항으로 바꿀 수 있다"며 "수정된 AI 교과서 시행 내용을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학교에 안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교육부는 올해 신학기부터 모든 초등학교 3·4학년(영어·수학),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영어·수학·정보) 학생들에게 AI 디지털교과서를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반대 여론을 고려해 계획을 수정했다. 교육부는 "올해 1학기에 최소 40~50%의 학교가 AI 디지털교과서를 채택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2월 중 AI 교과서 선정 학교에 대한 예산과 디지털튜터 지원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야권과 일부 교육계에서는 여전히 AI 교과서 도입에 반대하고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AI 교과서 검정 과정부터 위법적이었던 교육부의 불법 행정을 묵인하고 법치를 무너뜨린 위헌적 거부권 행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가처분 및 헌법 심판 소원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AI 디지털교과서 추진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계에서는 이미 AI 디지털교과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한 만큼, 향후 정국 변화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조기 대선까지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AI 디지털교과서에 부정적인 정부가 들어설 경우 정책이 좌초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I 디지털교과서 개발사는 "1년 유예 역시 당초 정부의 도입안과 달라진 상황이기에 이에 따른 손실이 예상된다"며 "정권에 따라 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홍주연 기자
jyho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