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먼저’ 계약은 '나중에'…”가 갑질된 이유는
||2025.01.20
||2025.01.20
공정거래위원회가 1월 6일 콘텐츠 분야 직권조사를 통해 크래프톤·넥슨·엔씨소프트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또 크래프톤과 넥슨코리아에는 각각 3600만원과 3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계약 내용을 담은 서면을 타 사업자에게 늦게 발급했다는 이유다. 계약을 체결해야만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하도급 관계라는 특수 상황이 제재 원인이 됐다.
17일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조계에 따르면 하도급 관계에서는 계약을 늦게 체결하는 것만으로도 하도급법 위반이 된다. 하도급 관계는 일(용역)을 맡기는 원청 사업자와 그 용역을 수행할 하청 사업자의 관계를 말한다.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한 3개 게임사는 녹음 등 게임 관련 용역을 위탁하면서 계약서를 늦게 발급했다.
전문가들은 하도급법이 하청 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계약 서면 발급 시점을 규정했다고 봤다. 계약서를 늦게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하청 측은 약속된 용역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어서다.
원청 측이 어떤 빌미로 돈을 덜 주거나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재를 받은 3개 게임사는 일부 거래에서 계약이 종료된 후에 계약 서면을 발급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하도급 계약서를 제때 작성하지 않는 것이 콘텐츠 업계에서 관행처럼 이뤄진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3년 신산업하도급조사팀을 신성하고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분야를 직권으로 조사해 온 배경이다.
앞서 지난해 하이브·SM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스타쉽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 5개사는 크래프톤·넥슨·엔씨소프트 비슷한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았다.
이들 엔터 5사는 음반·굿즈(MD) 제조, 영상 콘텐츠 제작 등을 위탁하면서 계약서를 미리 발급하지 않은 혐의다. 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자진 시정안을 제출하고 총 10억원 규모 상생안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하도급 관계가 아니라면 계약서를 늦게 쓴 것만으로는 공정거래법 등의 법 위반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봤다. 공정거래법은 보통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는 등 시장경쟁을 저해하거나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규제한다.
김광식 법무법인 청출 변호사는 “계약 서면을 늦게 발급하는 건 하도급법에서 가장 많이 문제되는 사안으로 꼽힌다”며 “만약 하도급 관계가 아니라면 계약을 늦게 체결한 것이 거래 상대방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초래했는지 등의 개별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