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없는 전기차에 엔진소리가 중요한 이유
||2025.01.07
||2025.01.07
전기차는 조용하다. 내연기관 차량 특유의 엔진음이 발생하지 않아서다. 매력적인 요소지만, 너무 조용한 나머지 사고 발생 가능성이 크다. 운전자에게 편할 지 몰라도 보행자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차가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의 정숙함이 보행자에게 위험 신호를 제공하지 못해 충돌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여럿 나왔다. 그래서 많은 국가가 전기차에 의무적으로 음향차량경고시스템(AVAS)을 장착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현재 자동차 제조사들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걸 넘어, AVAS를 통해 각 브랜드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포르쉐 타이칸의 미래지향적인 사운드, 피스커 카르마의 헤비메탈풍 사운드, 닛산 리프와 쉐보레 볼트의 독특한 고음 등은 단순한 경고음을 넘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전기차가 꼭 미래지향적인 소리를 내야 할 필요는 없다. 과도하게 이질적인 소리는 오히려 운전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개성과 실용성을 적절히 어울리는 방향으로 사운드 디자인을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자동차 제조사는 단순히 소비자의 취향을 맞추기 위한 게 아니라, 소음 공해 감소와 건강한 환경 조성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 인공적인 소리에 둘러싸인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 소리만큼은 자연스럽고 편안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음향 브랜딩 디자이너다. AVAS 소리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반영한다는 생각에 회의적이다. 이같은 접근법은 실용적인 필요(특히 시각 장애인이나 맹인 보행자를 위한)를 우선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운전자조차 원하지 않는다. 최근 음향 브랜딩 연구의 일환으로 운전자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을 때, 다수는 독특한 음색보다는 일반적인 소리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독특한 AVAS 소리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소음 공해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연구에서 교통 소음은 심혈관 질환, 청력 손실, 수면 장애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다는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2050년까지 대부분의 차량이 전기차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고려할 때, AVAS의 소음에 대한 논의 역시 필요하다.
물론, 그깟 자동차 소리가 뭐라고 규제까지 하냐는 반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각광받기 때문에 불거지는 문제도 있다. 정치적 갈등이 격화하면서 전기차 규제의 배경에 소음 저하 외 다른 의도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기차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심화하는 상황은 이런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
어찌 됐든 자동차가 내는 소리는 문화적, 감정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형 차량, 트럭, 고성능 차량에서 그렇다. 자동차 브랜드들은 여전히 전기차 미래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전통적인 특성을 건전한 방식으로 존중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물론 AVAS 소리가 반드시 획일적일 필요는 없다. 다양한 AVAS 소리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차량을 구분할 수 있다면 보행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차량의 AVAS 소리가 과하게 획일적이면 보행자, 특히 시각 장애인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도로 위에서 비슷한 AVAS 소리를 내며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자동차 제조사는 이런 창의적인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용성에 중점을 두면서도 청각적으로 즐거운 무언가를 제공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더 나은 AVAS 사운드 개발은 디자이너와 자동차 제조사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브랜드의 가치를 반영하면서도 기능성을 갖춘 사운드를 개발해,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도시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AVAS 소리 디자인에 대한 공통된 원칙 마련은 의무 규제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모든 제조사가 특정 음악 키를 기반으로 소리를 디자인하는 데 합의한다면, 다양한 브랜드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보행자에게 일관된 청각 신호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소음 공해를 줄이고 보행자의 안전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운전자는 차량 내부 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 소리의 힘을 활용하고자 하는 브랜드와 디자이너에게 수많은 음향 브랜딩 기회가 있다. 따라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AVAS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차량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음향에 집중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표준화한 소리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이다. 다양한 브랜드의 전기차가 조화로운 소리를 내면서, 보행자 안전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동시에 소리는 단순한 기능적 요소를 넘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다.
전기차가 가솔린 차량을 대체함에 따라 우리의 일상생활이 변화할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명백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다. 운전자, 보행자, 자동차 제조사 등 관계자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나갈지 신중해야 한다.
전기차 시대에 소리는 단순히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될 수 없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논평 기사의 의견은 전적으로 저자의 견해이며, 반드시 포춘의 의견과 신념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 글 Paul Amitai 사운드 에이전시 리슨 전략 총괄 이사 & 편집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